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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41 | 소쿠리 가득 봄볕이 | 황인숙

용인신문 기자  2010.03.22 16: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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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가득 봄볕이

 황인숙

길바닥에 낡은 소쿠리 하나 기우뚱 서 있다
그 밑에 쌀알이 반의 반 움큼 흩어져 있다
아주까리 씨앗같이 얼룽얼룽 여무신 얼굴로
할머니 한 분 담장에 기대 앉아 지켜보신다
무엇을 잡으시려는 걸까?
비둘기 한 마리 아장걸음으로 기웃거린다
나도 기웃기웃

소쿠리 가득 봄볕
할머니 눈에 봄빛
땅바닥 얼룽얼룽, 흩어진 쌀알

황인숙 시인의 시세계는 통통 튀는 상상력의 자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밝고 건강하고 맑고 명랑하다. 그러가 하면 밝은 것 속으로 얼필얼핏 쓸쓸하고 서러운 것들이 배치된다.

「소쿠리 가득 봄볕이」는 황인숙 시인이 사물을 응시하는 앙징맞고 따스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매우 간결한 단선구조를 이루고 있어 시인이 숨겨놓은 비의를 찾는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느 봄날 풍경을 전경으로 보여주고 있다. 낡은 소쿠리와 소쿠리 아래 쏟아져 있는 반 움큼의 쌀알과 쌀알을 쪼으려고 나타난 비둘기 한 마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와, 그 풍경 속으로 틈입해 들어가는 시적 화자가 있다. 이 시에서 비의라면 ‘봄볕’과 ‘봄빛’이다. 봄볕은 봄날 나른하게 고여 있는 햇빛으로, 봄빛은 대지로 쏟아져내리는 햇빛으로 이미지가 차별화된다. 그러므로 소쿠리에 가득 담긴 봄볕은 정적이지만 할머니 눈으로 든 봄빛은 동적이다. 검버섯이 돋아나 아주까리 씨앗처럼 여문 얼굴로 봄빛을 맞고 있는 할머니는 죽음과 삶의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결합시킨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