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 정치권의 구태를 보면 정말 구제불능이란 생각이 든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계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출마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요구한바 있다. 하지만 귀를 막고 있던 정치권이 이제 와서 깨끗한 선거를 부르짖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행태인가.
“일은 뒷전인 채 국회의원 부인 핸드백이나 들어주는 지방의원은 필요 없다.” 이 말은 지난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던 시민사회단체 토론회 장에서 나왔다. 이는 정당공천제가 또 다른 권력을 만들고, 거기에 줄서고 있는 정치권을 풍자한 말이다. 아니 풍자가 아닌 우리 지방자치의 슬픈 현실이다.
최근 지방선거 공천신청기간을 전후해 용인지역도 시끌시끌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공연하게 공천헌금설이 떠도는가 하면, 공천신청도 하기 전에 이미 특정인에 대한 내정설이 파다하다. 진위여부를 떠나 공천제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심사위가 구성됐지만, 정말 객관적인 심사가 될 것이라고 믿는 유권자들은 많지 않다. 공천신청자들조차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동안 선례를 보더라도 공천권자들의 입맛대로 후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심사과정에서 후보자 자질이나 지역 대표성보다는 정당과 국회의원에 대한 기여도와 충성도, 또는 공천 헌금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에는 부패인자가 늘 상존한다.
더 불행한 것은 공천을 받아 당선된다 해도 소신껏 일하기가 힘들다는 것과 정당 간 경쟁으로 자치행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정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될 경우 자치행정의 다양성이 배제되고, 획일적인 행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그래서 정당공천제를 완전히 폐지하거나 주민들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주민추천제’, 또는 후보자가 지지정당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정당 표방제’, 아니면 특정 지역에서 지역 정치에 주력하는 ‘지역정당제’ 등을 대안으로 검토해 보자. 미흡한 점도 많겠지만, 6대 지방선거부터는 반드시 심각한 지역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방선거 공천심사와 관련 해 “후보자의 도덕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며 “당헌·당규에 따라 알선수재, 개인비리, 공금횡령, 뇌물수수 등의 전력자는 공천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심사 신청조차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조차 후보자의 도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공천심사 이전에 정당공천제 폐지가 우선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도 수차례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여당은 정당공천제를 방치 공천헌금을 비롯한 각종 부정과 비리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지자체를 중앙정치권에 예속시키기 위함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자신들 앞에 줄 세우려는 권력의 야비한 속성을 드러냄이 아닌지 묻고 싶다.
따라서 정치권은 이제라도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인식하고,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를 운운하기 전에 불투명한 정당공천제부터 손질하는 것이 급선무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