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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43 | 분홍 꽃 팬티 | 정일근

용인신문 기자  2010.04.05 17: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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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병원 생활하면서
어머니 빨래 내손으로 하면서
칠순 어머니의 팬티
분홍 꽃 팬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꽃피던 이팔청춘
아버지와 나눈 사랑의 은밀한 추억
내가 처음 시작된 그곳
분홍 꽃 팬티에 감추고 사는
어머니,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호래자식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나
성(性)을 초월하는 거룩한 존재라고
사탕발림을 했나
칠순을 넘겨도
감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분홍 꽃 팬티를 입고 사는
내 어머니의 여자는
여전히 핑크 빛 무드
그 여자 손빨래하면서
내 얼굴 같은 색깔로
분홍 꽃물 드는데


정일근 시인은 사회문제를 따뜻한 눈으로 파악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 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그가 참으로 드물게 자신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병든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시적 화자가 어머니의 속옷을 빨면서 어머니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이 과장 없이 드러나 있는 시편이 「분홍 꽃 팬티」이다.

세상이 더없이 거룩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머니의 상이다. 아니 어머니는 언제나 거룩했다. 그것이 사회적 기대이며 여자에게 덧 씌어진 굴레였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오류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여자의 다른 이름일 뿐, 우리들은 어머니라는 이름 위에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부채를 얹어놓았던 것이다. 병든 어머니가 입고 있는 분홍 꽃 팬티는 어머니가 여자임을 웅변으로 증언 하는 증거물임을 아들은 깨닫는 아들의 얼굴도 분홍 빛으로 물드는 순간이다. 시편을 순간의 성화라고 말하는 것은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