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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44-그의 발걸음 소리 | 이태수

용인신문 기자  2010.04.12 15: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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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발걸음 소리

 이태수

다시 맑은 물에 발을 담근다
늦은 오후 홀로 깃들인 산골짜기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바라보면
물 위에 번지는 생각의 사방연속무늬.
이따금 돌부리에 이마 부딪쳐도
머뭇거리다 이내 흘러가는 물, 물소리.
그 위에 내리는 새소리, 낮게 어우러져
구르는 저 그윽한 서느러움.

어깨 비비대며 서 있는
나무들 사이, 빗금으로 내리는 햇볕.
잎새 몇잎이 나뭇가지를 놓고
물 위에 내리는 동안
새들이 끌어당기는 하늘 자락에는
몇 가닥 구름의 저 한가로움.

이 상처투성이의 마음에
작은 노래의 집이라도 지어주려는지,
산골짜기를 다 안아주려 하는지.
눈 감으면 비로소
생각의 사방연속무늬 지우며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 소리.
새소리 안고 물소리 디디며
가까워지는 이 발걸음 소리


이태수 시인의 시편들은 우리들의 일상어를 크게 뒤틀지 않고도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 한다. 이 말은 그의 시편들 속에 산문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선학 평론가는 이 산문적 요소들 때문에 이태수 시가 긴장을 유발 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시문이 일상어에 가해진 혹독한 형벌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이태수 시인의 시편들은 순하고 밍밍하다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편 속에는 일상어를 일깨운 깨달음의 환희를 내장한다. 아마도 이태수의 시가 긴장관계에 놓이는 것은 산문적인 요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깨달음의 문제인 듯 하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그의 사유의 공간에서 만나는 초월자의 느낌이다. 그 느낌은 구체적인 발걸음 소리로 온다. 그의 가이없는 생각의 무늬를 지우며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위무하기 위해, 발걸음 소리는 가다오는 것이다. 이 때의 발걸음은 그 자신의 초월적 자아이며 스스로를 구원하는 영혼이기도 하다. 누구나 마음의 병을 죽도록 앓고 나서 스스로를 치유하며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