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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45 | 폭설의 이유 | 이소연

용인신문 기자  2010.04.19 11: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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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45 | 폭설의 이유 | 이소연

흰 약처럼 쓰디쓴 고백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핏대를 세워 밤새 지르는 고함과도 같다
귀가 찢길 듯하다

차디찬 고백이 생피를 흘린다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는다
나는 우두커니로 확장된다

우리가 흘린 벙어리장갑 한 쌍이 보인다
깍지를 낄 순 없었지만
밑면과 밑면은 情死 한 연인처럼
더 바랄게 없는 표정으로 포개어져 있다
못다 한 고백들이 정전기가 되어
그 사이로 스민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흠뻑흠뻑 들린다
털이 많은 짐승 하나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스치며 지나간다

유리창을 한 페이지 넘긴다
나는 하얗게로 지워진다
지워진다로 정확해진다

*강정 시인에게

김소연 시인의 시세계는 수없는 자아의 발견과 확인 위에 놓인다. 그의 자아정체는 사람인 나, 그리고 여자인 나, 여기서 더 나가 몸을 가진 나로 확장되고 그다음에는 사회적 자아로써 우리 속의 나, 타자들 속의 나로 그 폭이 넓어진다. 그녀가 이처럼 집요하게 자신을 탐구하는 것은 자아의 존재론적 발견의 의미망 위에 시세계를 구축하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