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길
김광규
혼자서 산길을 올라 갑니다
길바닥에는 황토 흙과 돌멩이와 잡초 들
산비탈에는 소나무 참나무 왕벚나무 들
청설모와 다람쥐가 나는 듯이 오르내리고
멧비둘기와 산까치 들 짝을 부르고
골짜기 물소리와 그윽한 숲 냄새
멀리 산봉우리 위로 떠도는 구름
어느 산이나 오솔길은 비슷하지요
등산객이 많은 곳 아니라 해도
싫증나지 않은 한적한 산길 곳곳에
흙과 돌과 풀과 나무처럼 소박하고
정겨운 사람들 동행으로 벗 삼고
아내와 남편으로 맞이하라는
속삭임 귓전에 아련히 감돌다가
산길을 내려올 때 차쯤 뚜렷하게
들려옵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서야
그 소리 알아듣지요
1975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김광규 시인은 독문학을 전공했다. 그의 시가 범박한 면이 있다면 아마도 독문학 전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등단 35년이 넘도록 김광규 시인은 “언어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시인이다.
「산길」은 김광규 시인의 범박함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은유도 비약도 없지만, 그래서 닝닝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 시편은 생의 고즈녁한 소요의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며 속 깊은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너무 늦게서야 그 소리 알아듣지요”라는 구절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들리거나 너무 늦게 보이거나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다. 하기야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 한다면 그만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