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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제의 폐해로 얼룩진 지방자치

특집 | 흔들리는 지방자치
공천 아닌 사천 원인…올바른 시민 주권행사 원천 봉쇄
정당공천제, 자치단체장 리더십 부재만든 태생적 한계

김종경 기자  2010.05.10 13: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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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공천제의 폐해로 얼룩진 지방자치가 신음하고 있다. 여야 모두 원칙이 없는 공천 때문에 내홍을 겪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정당공천제와 자지차단체장의 리더십 발휘에 있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김종경의 용인이야기>를 통해 거론됐던 내용을 중심으로 현 지방자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 지방자치단체장의 리더십은?

자치단체장의 리더십 유형을 쉽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아직도 실험적 무대로 불안정한 상태다.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한 지방자치가 전격적으로 도입됐음에도, 근본적으로 정당공천을 받은 선출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성을 담보한 단체장들의 진정한 리더십을 검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민선시대는 관선시대와 달리 자치단체장들이 기존의 공직문화를 개방형 CEO형태로 바꿔가는 경향이 많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뒤엉켜 있어 장단점이 다양하게 노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20여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근본적으로 정치 환경이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자치단체장의 리더십이라면 일반적으로 행정능력과 경영능력, 그리고 도덕성과 청렴성을 통한 비전제시 등의 총체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글로벌 마인드가 포함될 것이다..

#지방자치 역사와 과제

풀뿌리 민주주의의 바로미터가 지방자치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격변기에 태어났기 때문인지 반세기가 지났어도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부정적인 견해론자들은 지방자치 폐지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1948년 제정된 초대 헌법부터 명문화된 제도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불안정한 사회분위기를 내세워 첫발도 떼지 못한 지방자치법을 개정, 보류시켰다. 첫 시행은 한국전쟁 기간 중이었던 1952년도였다.

그것 역시 이승만 정권이 재집권을 위한 전략적 시나리오였다. 재집권에 성공한 이승만 정권은 제2차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모색한다. 이유인즉, 지방의회가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잇따라 불신임을 결의해 단체장들이 고유 업무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 그때도 단체장과 의원들 사이에 청탁이나 이권거래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은 1956년 2월 지방자치법을 개정했지만, 5개월 만에 또다시 개정한다. 야당이 승리할 경우 최고 권력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불과 2년 후인 1958년 12월에도 자치단체장을 임명하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구축을 위해 지방자치법이 개정된다.

지방자치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이 1960년 4·19혁명으로 붕괴됐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1960년 11월 1일 전면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법개정안을 확정한다.

그해 12월 서울특별시와 도의회선거, 시·읍·면장 선거 및 서울시장과 도지사선거가 실시됐다. 이때가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상 최초로 완전한 자치제가 도입된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단명하고 만다. 그래서 이 땅의 지방자치는 권력자들의 소모품이자 폐기 처리된 민주주의의 유품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의 생명력 때문인지, 1980년대 중반 5공화국 말기부터 지방자치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다. 우여곡절을 겪던 지방자치제는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6월 27일 비로서 온전한 4대 지방선거로 부활한다. 이때가 지방의회 제2기 출범이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30여 년 만이었다.

지방자치의 부활은 이렇게 산고의 역사를 관통해왔다. 온전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14년째고, 지방의회는 벌써 18년째다. 처음엔 무급제, 소선거구제, 무정당제였으나 이젠 유급제와 중선거구제, 그리고 정당공천제로까지 바뀌었다. 이것 역시 여론이 분분해 개정안이 제출되고 있는 상태다.

이렇듯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본질인 주민자치(住民自治)가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가 아직도 많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치권의 변화와 자치단체장들의 탁월한 리더십이 관건인 셈이다.

#지방자치(생활정치)는 중앙정치판의 축소판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회의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 한 쌍두마차다. 선진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의회 의장을 겸임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양분화 되어 있다.

지방의회는 본예산을 심의 의결하고, 행정사무감사 등 다양한 의정활동을 하게 된다. 단체장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와 국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단체장의 리더십 역량은 지방자치의 발전과 퇴보를 크게 좌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체장들이 소신껏 일하기가 어려운 선거제도라는 점이다. 자치단체장들은 공천권자인 소속 정당의 국회의원 또는 당협위원장(구 지구당 위원장)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행 기초의원 선거구는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선거구별로 대부분 1명씩 뽑았다. 그런데 이때부터 작은 선거구를 합친 다음 의원 2~4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다. 문제는 정당바람 때문에 선거결과가 특정정당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경우 2006년처럼 특정 정당 소속의원들이 대거 입성할 경우 같은 정당소속의 단체장일 경우 방임 또는 담합을 일삼는다는 것에 있다. 반면, 단체장이 다른 정당소속일 경우 발목잡기 현상이 빚어지는 등 지방자치제의 역기능 또한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여야 모두가 대의 정치를 빌미로 정당 공천제의 문제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공천제 때문에 발생되는 폐해가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결 같이 패거리 정치를 조장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을 선출할 때 인물이 아니라 정당만 보고 묻지마식 투표를 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정치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리더십이 실종된 지방자치단체장 논란
《논어의 자치학》을 쓴 강형기씨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를 자원과 예산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즉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소화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의미다. 기존 지방자치단체들의 활동을 경영이 아닌 운영으로 평가한 대목이다.

그러나 지역 주권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자치단체에서 전개하는 사업은 지역의 자원과 경제력을 늘려 나가는 경영 활동임에 틀림없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의 기본 임무가 단순 운영자가 아닌 기업행정가라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이것이 지방자치단체장 리더십의 가장 큰 덕목이라 할 수 있다. 흔히 공무원들은 스스로 “법을 팔아먹고 사는 직업”고 말한다. 모든 행정 행위를 법률적 테두리에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처럼 창조적이고 공세적인 모습보다는 경직되고 소극적이란 의미다. 물론 요즘은 기업이나 전문 기관에 용역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은 CEO마인드를 소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기업지원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기업행정을 전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운영을 위해서는 실패와 성공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실천해야 한다. 또 기술과 경영, 그리고 영업까지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 리더십의 본질은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 즉 문화적이고 환경을 고려한 지역을 만드는데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와 환경 그리고 복지 차원에서 노력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자치단체장의 리더십 발휘에 있어 가장 큰 복병중의 하나는 민선자치 시작 후 지자체가 운영형에서 기업형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정치형 공무원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연공서열도 이미 옛 이야기가 됐다. 어느 지역이든 자치단체장이 한번 바뀌면 요직에 있던 공무원들이 싹 물갈이 된다. 정치권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보수와 진보, 그 이상을 초월한 정치적 인사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게 지방자치의 현 주소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의 정치집단화도 큰 문제다. 이들은 대부분 정당공천제를 통해 지방의원이 된다. 그들은 비상식적인 당론에도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국회처럼 거수기로 전락할 때도 많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이 훌륭한 행정을 펼쳐도 정치이해관계에 따라 무산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단체장 리더십, 정당공천제 폐지가 우선

   
1991년 첫 기초의원 선거 때는 정당 공천 없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다. 당 차원의 내천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특정 정당으로 쏠리는 현상은 없었다. 이젠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바뀌었고, 정당공천제와 유급제가 도입됐다. 민노당 같은 군소정당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당공천제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폐해를 지적한다.

이젠 자치단체장도 정당공천을 받기 때문에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소신있는 행정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을 받은 단체장이나 시의원들은 당론이 정해지면 따라야 하고, 그를 거부하면 해당행위다. 당연히 차기 공천은 포기해야 한다. 정당공천체야말로 중앙정치권에서 보면 지역정치인들을 유일하게 통제 관리할 수 있는 확고한 시스템인 셈이다.

지방자치의 성패요인은 자치단체장의 올곧은 역할과 자질에 있다. 곧 이것이 리더십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공천권을 빌미로 자치단체장이나 기초의회 후보자들을 줄 세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 공천심사위가 후보들의 자질과 득표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면, 분명 민주주의를 빙자한 반민주행위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소신있는 리더십을 찾기가 사실상 어렵다.

# 단체장 리더십의 가장 큰 덕목 ‘도덕성’

최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6년 취임한 민선 4기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47.8%인 110명이 비리와 위법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엔 여주군수, 당진군수 등 현역 기초단체장들의 노골적인 비리행각이 드러나 방임 상태의 지방권력에 대한 대수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단체장들의 리더십 발휘에 근본이 되는 도덕불감증의 심각성을 보여준 통계다.

민선 단체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 중의 하나는 선출직이라는 점을 이용한 시장 발목 잡기다. 지자체에는 각종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억지성 민원도 상당수 있다.

대형사업과 관련된 민원이나 특정 정당 및 특정 인사들의 크고 작은 청탁성 부탁도 적지 않다. 정당 및 친분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 때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단체장과의 친분이나 청탁을 통해 자신들의 이권이나 챙기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단체장들은 재선을 의식해 유권자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도덕성에 흠결이 생기게 마련이고, 단체장으로서의 리더십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지방자치제를 위해서라면 공천제를 폐지하던지, 공정하고 객관적인 후보들을 공천하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권자들이 선택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자치단체장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우선이고,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할 수 있는 정치권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