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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킨 조상으로 평가”

‘장양공 이일 장군 연구’ 국역 장양공전서 발간

박숙현 기자  2010.05.17 18: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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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 장군에 대한 연구서가 국학자료원에서 나왔다.

이번 연구서에는 이일 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주목을 끌고 있다.

공동 저자 가운데 한명인 이원명 교수(서울여자대학교)는 “역사에서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 인물이 감당하기 어려운 당시 시대적 여건이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보다 결과나 후대의 기대와 아쉬움을 평가하다보니 역사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에 인색했다”며 “ 특히 전쟁에서의 승패는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군사제도와 국방시책 및 무기체계 등 당시 방어체계와 관련된 인물이라면 전체 상황을 판단해서 신중하게 공과를 논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지적 했다.

그는 조선 중기 이일 장군이 그중 한명이라면서 “무과에 급제한 후 주로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활동하던 16세기 말 두만강 변의 여진족 니탕개 난(1583년)이 발발하자 여진족 토벌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등 신임을 받았지만 당시 국방상 무방비 상태로 조총을 앞세운 일본의 임란 침략(1592년) 시 초기 상주전과 충주전에서의 패전으로 그후 ‘해유령전투’나 ‘평양전투’(제2차) 등에서의 전공에도 불구하고 불운의 장군으로 비판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임란 이후에 해유령전투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선조로부터 어마를 하사 받고 제2차 평양전투의 공로로는 명 황제로부터 백금 20량 등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니탕개 난으로 경원부사로 차정된 이후 두만강 녹둔도 지역 및 두만강 건너 시전부락 점령 등 16년간 함경도 지역에서 북병사로서 활동한 것은 주목 할 만하다”며 “이는 한 개인의 업적을 떠나 향후 두만강 지역의 녹둔도를 포함한 간도 및 연해주 지역에 관한 영토문제에 있어 우리측이 조선조 말까지 이 지역을 확보하고 있었고 관리 주체였다는 점을 증명함에 이일의 공로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용인이씨 고문 이광섭씨는 “이번 연구서에서는 그동안 선조로부터 백금을 하사 받은 것으로 알고 있던 점이 명 황제로부터 받았음이 새롭게 밝혀지는 등 성과가 크다”며 “우리 용인이씨 조상이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킨 이일 장군의 공과는 제대로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