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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 오춘옥 시집 『뒷모습이 말했다』

시편의 행간마다 숨어있는 감동의 DNA을 만나다

김종경 기자  2010.05.31 11: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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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시 전문지 《심상》에 「저물무렵 꽃시계를 바라보며」외 3편으로 등단한 오춘옥 시인이 첫 시집 『뒷모습이 말했다』를 출간 했다. 이번 시집은 등단 24년 만의 첫 결실로 녹익은 신 서정성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 이승하(중앙대 교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아픔을 보듬는 시인의 ‘생명의식’ 혹은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주를 이룬다”고 평했다.

오춘옥 시인은 ‘시인의 집짓기’를 부제로 한 「거미줄」  을 통해 시와 시인의 존재를 말한다. 시인은 스스로 아주 연약한 언어의 줄로 허공에 지어진 한 채의 집이 되고 싶어 한다.

“처마와 서까래는 되도록 낮추거라/ 머리 이마 부딪칠 때마다 몸도 함께 낮추거라/ 아프게 깨워가라는 어미의 청이 있었나/ 머뭇거리다 한 줄, /뒷모습도 버리지 않고 끌고 가는 외줄타기 /어둠 한 삽, 구름 두 짐 지고 오르는 허공의 집짓기 …(중략)… 제 속의 깊은 것들 꺼내 집을 짓는 저녁 거미처럼/ 나도 내 몸 꺼내 어느 먼 궁창에/ 한 채 집이 되고 싶은 날” ―「거미줄」 중 -

 

   
이 시집은 5부 61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언어의 화려한 수사나 치열한 역사의식을 불러들이지 않고 있다. 시인의 연륜이 빚은 절제와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시인은 행간마다 조용한 감동을 전해주는 독특한 시의 DNA를 숨겨 놓았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때론 절망을 다독여주는 어머니와 누이의 낮은 목소리를 만날 수도 있고,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문장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여름 내내 들에 일 나갔다가/ 설악산 산머리에서 붉은 머리띠 동여매고/ 하루 사십 미터씩, 온 산을/ 저희들 색깔로 물들이며 내려온다는// 그들은 세상에 꼭 한마디, /뜨겁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다” ―「단풍」 전문-

시인 역시 살아온 세월이 고단함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뒷모습이 말했다』의 마지막 시편들까지 모두 읽고 나면 풍요로운 가을 한 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오춘옥 시인은 1961년 용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시비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도서출판 모아드림, 127쪽,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