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을 접할때마다 우리 사회의 음지에 가려진 사회적 냉소주의가 심각한 수준임을 깨닫습니다.”
다리가 썩어가는 데도 몇천원의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혼자 앓고만 계시는 어느 독거 할머니를 보면서 정선아(29·용인소방서 역북파출소 구급대원)씨는 한때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IMF다 경기불황이다 해도 밥은 먹고사는 세상이 됐는데 몸조차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직도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는 독거노인들이 우리의 주변에 적지 않다고 정씨는 전한다.
정씨는 용인소방서의 몇 안되는 여소방사다. 그는 구급대원으로 활약하면서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돼왔다.
각종 화재현장에 달려가 남자 못지 않은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는 정씨는 지난해 1월 용인소방서에서 소방사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간호사로 5년동안 병원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소방사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습니다. 처음엔 힘도 많이 들었지만 삶의 희망을 일깨우는 구급대원으로서의 직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정씨에게 제일 힘든 때가 ‘정신질환자’나 ‘만취자’를 대할 때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에서 諮貶【??외면하는 이들을 끝까지 돌보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독거노인이 많은 남사면 독거노인들에게 ‘비상벨’을 울릴 수 있는 단말기 90개소를 설치한 일이다.
가장 가슴아팠던 순간은 70대 아들이 병원으로 가는 의식불명의 90대 노모에게 생일상을 차려주었던 일이다. 순간 눈시울이 불거져 가슴 아팠다고 정씨는 말했다.
정씨는 동료 소방사들의 노고에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짙은 연기 속으로 생사를 넘나들며 화재현장에 집입하는 그들을 볼때면 안스러울 정도입니다. 화재진압이 끝나고 나서도 차량정비 등으로 밤을 꼬박 세우기 일수입니다.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