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취가 무르익어 가던 토요일 오후, 작은 문학행사장을 찾아갔다. 그날은 마침 한글날이었다.
지금은 유원지로 개발되어 식당가와 카페 촌으로 유명해진 수지구 고기교회가 목적지였다. 인근 대형교회들과는 달리 폐교분위기의 단층짜리 교회와 작은 부속 건물 몇 동을 에워싼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는 점점 도심의 섬으로 고립되는 분위기였다.
다행인지 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시골풍경이 남아있어 좋았다. 행정구역명은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이지만 처인구 끝자락에서 가자면 100리 길이 훨씬 넘는다. 예로부터 고기리는 용인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보기에 변방이 뒤바뀌었다.
안내판 하나 없는 행사장은 허름한 교회 뒤편 구석의 밤나무 밑이었다. 작은 나무 무대 앞에는 3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풀밭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고, 입담 좋은 사회자의 거침없는 진행이 눈에 띄었다. 이곳 주민들의 자작시 시낭송회장이였다.
낭송 중간마다 양념으로 전문가 수준의 가야금과 기타 연주, 그리고 노래 가락이 곁들여졌다. 저녁노을이 비스듬히 넘어가고, 몇 개의 조명등으로 분위기가 바뀐 무대에서는 ‘가을편지’ 노래가 풍요로움을 더해 주었다. 이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음악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공동체의 활동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날 시 낭송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생애 처음으로 자작시를 썼거나 낭송을 했다고 했다. 초청받은 전문시인 한두 명 빼고는 대부분 학창시절이후 처음 시를 썼다는 고백이 오히려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평범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은 시를 쓴다는 나의 가슴에도 뜨겁게 와 닿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를 쓰지 못한 사람들은 기성시인들의 작품을 가지고 나와 참여했다. 간단한 뒤풀이에서 만난 그들은 새롭게 만난 삶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이웃과 이웃,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허무는 소통을 꿈꾸고 있었다.
이곳엔 몇 년 전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이 생겼고, 이날 행사는 도서관안의 ‘글쎄다’라는 어른독서모임이 주관했다고 했다. 또 하나의 작은 인문학 공동체가 마련한 조촐한 가을축제였던 것이다.
구수한 입담과 재치로 무려 3시간 가까이 시낭송회를 소통의 장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아동문학가 이상권 선생이었다. 몇 년 전부터 이곳으로 이사와 산다고 했다. 얼마 안됐다는 ‘글쎄다’ 모임에서는 벌써 책을 100권 넘게 읽었단다.
이들은 우리 시대의 불행한 노마드(유목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용인토박이 촌놈인 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여유로운 풍경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 한편으로는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용인 서북부지역이 수백, 수천 년의 침묵을 깨고 개발이 시작된 것은 불과 20년 안팎이다. 자연스럽게 기존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 갔고, 이젠 아파트 중심의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인문학의 기반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졌고, 새로운 공동체가 모색되고 있는 시점이다. 다행인 것은 10여 년 전부터 작은 도서관 운동이 시작됐고, 어느덧 인문학 운동 공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나는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 광풍이 휘몰아치던 용인변방에서 인문학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생겨나고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에 행복했다. 이젠 용인시의 가장 큰 문제점인 도농 간 삶의 질 양극화 현상도 인문학으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수준은 물론 교육·문화인프라의 양극화 해법도 인문학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지식 나눔을 실천하며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이웃과 이웃, 마을과 마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바야흐로 지역공동체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