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오탁번 시인의 <폭설(暴雪)>전문이다. 이 시는 폭설이 내린 시골 마을의 풍경과 이장의 가식 없는 말을 빌어 마을공동체 삶을 해악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시골에서 자란 중년 세대 이상이라면 눈 온 다음날 풍경을 추억하며 웃음 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엔 시골마을에서조차 이 시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마을공동체를 찾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지방자치조례로 자기 집 앞 도로의 눈을 치우지 않을 경우엔 과태료를 부과할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직업군의 다양한 변화로 인해 마을공동체가 심각하게 붕괴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용인지역도 이름만 일부 바뀌었지 무려 1000여명의 이·통장이 활동하고 있다. 옛날엔 무보수로 마을의 대소사와 궂은일을 도맡아하던 심부름꾼이자 어른이 바로 이장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연말이면 집집마다 곡식이나 돈을 조금씩 걷어 이장의 수고에 답례하고, 또 다시 마을의 대표자들을 추천하거나 선출했다. 하지만 이젠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 이장들은 법적으로도 준공무원 수준의 역할을 하며, 일정 금액의 활동비와 수당, 그리고 다양한 복지혜택을 받으니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그래서인지 또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개발지역에서는 다양한 이권에 개입하기도 하고, 마을주민들 간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순수하게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또 하나의 권력, 완장이 됐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적지 않다.
게다가 각종 선거철마다 이·통장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선거 로비대상이 된다. 결과적으로 자의반 타의반 일반 주민들과의 가교 역할도 수행한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으니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제라도 자치단체를 비롯한 마을 리·통장들은 건강한 마을공동체 복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자연마을공동체는 물론 아파트공동체까지 인문학공간의 기초단위임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진다는 것은 이웃과 마을공동체가 붕괴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을 이·통장들부터 완장을 벗어던지고 개인주의와 문명의 지배로 무너진 마을공동체 복원의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자체의 인식변화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