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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막걸리 한잔 권하고 싶은 ‘용인 5일장’

김종경 기자  2010.11.30 1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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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5일장엔 풍요로움과 추억이 가득하다. 올 여름엔 유독 국지성 소나기가 많았던 탓에 장꾼들과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이 많다. 하루 장사를 허탕 친 장돌뱅이들이 푸념을 가득 담은 막걸리 잔을 건넨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검은 하늘에 붉은 노을이 몰려와 경전철 교각에 걸리고, 유모차를 앞세운 할머니가 파장의 여운을 힘겹게 끌고 간다.


일교차가 심한 가을엔 새벽부터 안개가 몰려와 늦은 시간까지 시위를 벌인다. 안개의 영토에 들어서는 이방인들에게 텃새를 부리는 모양이다.


금학천변으로 늘어선 장터와 산책로의 여유로운 풍경이 대조적이다. 몇몇 장돌뱅이들은 일찌감치 술에 취해 금학천 다리 밑에서 낮잠을 잔다. 뭔가 사연이 가득해 보이는 젊은 여인이 책을 읽으며 파장을 기다린다.
이따금 십자가를 짊어지고 말세를 부르짖는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그 십자가 밑으로 온몸을 낮춰 구걸하는 사람이 지나간다. 추석 대목엔 휠체어를 탄 부부가 장 구경을 나왔고, 신발가게 앞에서 새운동화를 손에 쥐고 마냥 즐거워하던 소녀의 행복을 엿본다.


늦가을 저녁엔 막걸리 탓이었을까. 얼간해진 장꾼들이 각설이 엿장수의 가락에 맞춰 거리에서 춤을 춘다. 각설이의 걸쭉한 입담과 노랫가락에 온몸을 흔들고, 인심 좋게 울릉도 호박엿을 사간다. 파장이 되자 출출해진 각설이들이 “연정이네 포장마차”에 들어와 칼국수를 먹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용인사람이란다. 보기와는 달리 아주 점잖은 젊은이다. 이 시대 마지막 각설이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막걸리 한잔 권하며 인터뷰 약속을 청하고, 멋진 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또 한 팀의 멋진 각설이들이 들어와 칼국수를 게걸스럽게, 후룩후룩 맛있게 먹는다. 장터에 앉아 있으면 오랫동안 잊혀졌던 얼굴들도 만날 수 있다. 한순간 이렇게 왁자지껄 지나가는 풍경을 통해 인생을 엿본다면 오만일까.


그 옛날 아버지처럼 장날이면 술에 취해 집으로 간다. 죽마고우이면서 술친구인 진한이와 오래전 장돌뱅이가 되어 잡곡 장사가 된 친구 명선이를 만나 잡곡 한 봉지를 산후 한잔 더하러가자고 소리친다. 휘청휘청 아버지의 발걸음을 닮아간다.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용인 오일장도 이젠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장돌뱅이들에게는 정해진 자리가 있다. 몇 번만 장 구경을 나가도 낯익은 얼굴들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장날마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보니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꽤 늘었다. 이런 풍경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계절이다. 추운 겨울이 됐으니 더 썰렁해질 것이기에.


다음은 필자의 졸시 <장날 풍경>전문이다. 누군가에게 막걸리 한잔 권하고 싶은 날엔 사랑하는 사람을 장터에서 만나고 싶다.


장날마다 가설무대처럼 왔다가는/ 연정이네 포장마차에 가면/ 가끔 할머니 젖 냄새를 마시고 취한다.// 산골마을에 장이 서는 날/ 누군가 끌고 온 반쪽짜리 바다풍경에도/ 나는 지독한 멀미를 해야만 했다/ 생선좌판의 거친 파도소리와/ 역한 홍어 찜의 곰삭은/ 세상이야기/ 난전의 장돌뱅이들을 오가며/ 갈매기처럼 기웃거리는 날이면, 울컥/ 낯선 당신에게 막걸리 한잔 권하고 싶다.// 가설무대 앞을 지나가는 풍경들, 그 뒤엔/ 지상의 오래된 노을이 쓸쓸하게 서있고/ 반쯤 굽은 허리를 곧추세운 빈 유모차만/ 지팡이처럼 손자처럼 앞장서서/ 파장의 장터를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