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신앙(彌勒信仰)은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우리 민중의 생활 전반에 깊숙하게 자리잡아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으로 형성, 발전되어 왔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란 석가(釋迦)의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곧 현재불(現在佛)인 석가에 이어서 다음 대에 부처가 되기로 정해져 있는 보살(菩薩)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에 있어서 미륵(彌勒)은 과거불과 현재불의 다음에 나타날 미래불(未來佛)인 것이다. 그래서 미륵은 현재 부처님이 되고자 수행하고 있는 보살이지만, 이미 다음 대의 부처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아니라 미륵불(彌勒佛)로도 불리고 있으며, 불상을 만들 때에도 보살의 형태로도 나타나고 부처 곧 여래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불교의 설화에 따르면, 석가(釋迦)가 성불하기 전의 보살(菩薩)이었을 때 미륵보살과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근기(根機)에 있어서는 미륵이 석가보다 먼저 성불할 수 있었으나, 석가보살의 수행이 너무 맹렬하고 진실하여 보통 100겁의 수행을 필요로 하는 보살의 수행기간을 91겁으로 마치고 미륵보다 먼저 성불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석가보살은 오늘날 우리 중생을 제도하는 현재불(現在佛)이 되었고, 미륵은 미래불로서 아직도 성불하기 위해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미륵(彌勒)은 우리가 죽은 뒤의 세계 즉, 불교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도솔천에 올라가 그 곳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도솔천에 올라와 있는 많은 천중(天衆)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육욕천(六欲天)의 하나이며 천계(天界) 가운데 가장 낮은 사천왕계(四天王界)에 이어 도리천( 利天), 야마천(夜摩天) 위에 위치해 있다. 즉, 도솔천은 수미산 꼭데기 12만 유순(由旬)되는 곳에 있는 천상의 세계로서, 칠보로 된 궁전이 있고 이 곳 사람들의 키는 2리나 되며 수명은 4천 세인데, 인간 세상의 400세가 도솔천의 하루 밤낮에 해당된다고 한다. 곧, 이 도솔천은 미륵신앙에서 말하는 천상(天上)의 정토(淨土)인 것이다.
경전에 의하면, 미륵(彌勒)은 석가(釋迦)의 열반 후 56억 7천만 세에 이르러 도솔천의 수명이 다할 때, 우리들이 사는 지상세계에 내려와 부처가 되어 용화보리수 아래에서 세 번에 걸쳐 설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미륵(彌勒)을 恣?선근을 쌓아서 이 설법에 참가하여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바로 미륵신앙(彌勒信仰)이다.
미륵신앙(彌勒信仰) 인도(印度)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졌다. 현재 국보 83호와 국보 78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반가상(金銅彌勒半跏像)은 삼국시대 미륵신앙의 결정체라 할만하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수많은 미륵불이 조성되는데 거대한 옥외 불상이나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미륵불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불교를 배척하는 사회풍조로 인해 큰 미륵불의 조상은 거의 없고 대체적으로 작은 미륵불이 나타나고 조각수법도 매우 조잡해지고 있다. 그리고, 미륵신앙은 점차 민간 신앙화하면서 석불(石佛)뿐만 아니라 심지어 장승(長 )조차도 미륵님이라 부르며 득남이나 기복(祈福), 치병(治病), 수호(守護)의 소원을 빌었다.
이 용화전(龍華殿)의 미륵(彌勒)도 조선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민간신앙화한 장승(長 ) 형태의 조형물로서, 구성(駒城) 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재인 셈이다. 용화전(龍華殿) 미륵(彌勒)은 비록 자리를 옮겨 이 자리에 서 있지만 지금도 ?영험함은 변함이 없다고 있다고 하는데, 세월이 바뀌면서 점점 찾는 이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돌아서는 필자를 자꾸만 붙잡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