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생들 사이에 하는 우스갯 소리에 이런 것이 있었다. “3번 버스가 한강다리를 건너다가 강물로 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 죽었는데 그중에 매우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일까?” 그 답은, ‘ 3을 8로 잘못 보고 버스에 탓던 사람’,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잘못해서 반대족에서 버스에 탓던 사람’, ‘바로 전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졸다가 그냥 지나쳐 온 사람’, ‘ 전 정류장에서 버스가 이미 출발했는데 허겁지겁 달려와 버스를 두드려서 세우고 가까스로 버스에 탓던 사람’, ‘손톱깍이를 팔려고 기사에게 사정사정해서 어렵게 버스에 탓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억울하다고 할만큼 재수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말고도 버스에 탓던 사람들 모두가 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로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천년의 특성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하였었다. 그것들을 종합해 보면 새천년의 특성은 한마디로 다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삶?복잡해지고 문명이 발전될수록 세상은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면을 갖는 동시에 부정적인 면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흔히 자기의 기준에 따라 어느 일면만을 보기 쉽다. 또한 한번 그렇게 보고 나며는 자기의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다른 것까지도 한쪽 면만을 고집하게 된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컵에 물이 반쯤 남았을 때 어떤 사람은 벌써 물이 반이나 없어졌으니 빨리 물을 더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은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으니 충분하다고 말한다. 똑같은 것을 앞의 사람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고 뒤의 사람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본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동시에 존재하고 ‘지킬과 하이드’가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사람도 없으며 또한 그렇게 나뿐 사람도 없는 것같다. 살인마가 속죄하고 개과천선한 예나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해 온 성직자가 알고보니 성금을 착복하여 향락에 빠졌더라는 등의 예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상에 쓸모가 없는 것은 없다. 잡초를 뽑으며 “이런 쓸데없는 것이 왜 생겼을까?”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잡초는 토사의 침식을 막아주고, 퇴비가 되어 식물의 성장을 도와주며, 또한 다른 식물들의 성장경쟁력을 키워주기도 하는 유익함이 있다.
중동에 가면 괴물메기라는 못생긴 물고기가 있다. 몸에는 억센 뼈와 지느러미만 있어서 먹지도 못한다. 이런 괴물메기도 쓰이는 곳이 있다. 시장에 비싼 값을 받고 팔 다른 물고기들을 잡아 가둔 수족관에 넣어놓으면 다른 물고기들이 이놈한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긴장을 하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한다. 사람도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각자 일할 곳이 있는 것이다.
애인이나 배우자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글세, 사랑한다고 말해야 서로가 좋을 테니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겠지.” 어정쩡한 대답이라고 비난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그게 가장 적당한 대답이 아닐까.
아무튼 우리는 너무 쉽게 단정적으로 말하고, 너무 눗?흑백논리에 빠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 반대의 측면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그리고 내생각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않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