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노의 석양
신원철
성질 사나운 것,
서녘으로 넘어가면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쏘아보듯
마지막까지 아프도록 눈을 부릅뜨고
하늘가를 빨갛게 핏빛으로 물들인 다음
뚝 떨어지는데
감히 마주볼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라
가슴에 서늘한 재를 남기는 것이다
피라밋 호수 인디언 거주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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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경테의 노강사,/ 낡은 가죽가방을 신주처럼 안고/ “이봐 신 선생!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왜 좀 눈치껏 못해?”/ “아 그러기에 선생님도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죠!”/ 그처럼 맛있는 술은 다시 없으리/ 나 그때 시간강사 10년차, / 끝내 토악질하듯/ 실력자 아무개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다가/ 비틀비틀 헤어지고는 했는데/ 오늘은 / 수안보 호텔의 세미나에서 영시를 토론하고/ 점잖은 사람들과 품위 있게 밥과 술을 먹은 뒤/ 편의점 노천 탁자에서 천연의 암반수 하이트맥주를 마시고 있다 -「노천 탁자의 기억」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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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이성혁은 “기억은 대부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덧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데, 시인은 현재에 과거에 대한 기억을 삽입시키면서, 무심코 흘러가고 있는 지금을 낯설게 만들어 숙고의 시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 시인은 1957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2003년 《미네르바》로 등단, 같은 해 첫 시집 『나무의 손끝』을 발간했고, 저서로는 『현대미국시인 7인의시』『역동하는 시』가 있다. 현재 <다층>동인으로 강원대 영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