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쓴 허균 잠든 곳 … 허난설헌 친필 시비 눈길
조선 4대 명필 양사언·한석봉 글씨 묘표·신도비 씌여
최근 망주석 2기, 문인석 2기, 동자석 2기 무더기 도난
지난해도 사라져…최근까지 장명등 비롯해 20여기 추정
각종 지정·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지자체 인식전환 시급
원삼면 맹리 소재 양천허씨 묘역의 잇따른 석물 도난 사건은 향토문화 관계자들과 후손들에게 허탈감과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문화재 도굴·도난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용인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국적인 문화재 도난사건은 두자리 숫자다. 지난해엔 28건으로 오히려 예년에 비해 줄긴 했지만 이것은 문화재청과 경찰의 집계일 뿐, 실제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이보다 수십, 수백배나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용인지역도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분묘 석물은 도난에 항시 노출>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 99년까지 조계종 사찰에서만 450여건의 문화재가 도난 당했다고 한다. 가장 취약한 부문은 사찰 소장 불교 문화재라는 것. 대부분 산중에 있어 보안이 취약해 도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과 들녘에 방치돼 있는 오래된 묘역의 석물들이다. 신도비와 비석 등은 출처가 드러나기 때문에 도난 우려가 적지만,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장명등 망주석 등은 출처 확인이 어렵고 정원 조형물로 인기가 높아 인사동 등지에서 400∼500만원 전후의 고액에 밀거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일부는 장물단에 의해 해외로 유출되고 있어 문화재 밀반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천허씨 묘역 관리인 김현수(43·원삼면 맹리)씨는 “매일 묘역을 지키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답답하다”며 묘역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씨는 허씨 종중의 땅에 농사를 지으며, 시제와 묘지 관리를 맡고 있는 농민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장물단과 밀거래단은 요즘 같은 농번기를 최적기로 삼아 전국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양천허씨 묘역 현황>
양천허씨 묘역 입구에는 묘역 이전과 재단장을 알려주는 천봉기념비(遷奉記念碑·1968년)가 있고, 잇따라 옆에 허엽과 허부의 신도비가 있다. 또 신도비 바로 뒤쪽에는 허난설헌의 친필이 새겨진 시비가 있어 찾는 이들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1582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도비에는 조선 4대 명필로 일컬어지는 양사언(1517∼1584년)과 한호(호 석봉)가 묘표의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전문가들도 문화재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낮은 구릉에 조성된 묘역은 허엽(1517∼1580)의 묘를 시작으로 허부(1585∼1659), 허실(1574∼1629), 허균(1569∼1618), 허봉(1551∼1588), 허성(1548∼1612), 허엽의 아버지 허한, 허구(1514∼1536), 허기(1536∼1601), 허부의 부인 초계변씨 등의 묘소가 있다.
<도난 석물 사진기록 확인>
답사단에 의해 확인된 양천허씨 묘역 도난 석물은 허균 아버지 허엽(1517∼1580·조선중기 문신) 묘소의 망주석 2기(좌154·우155), 허엽 아버지 허한 묘소의 문인석 2기(좌47×38×174/우43×39×175)), 허부(1585∼1659) 부인 초계변씨 묘소의 동자석 2기(좌32×28×88/우 31×29×100) 등 총6기다. 다행히 올해 사라진 석물들은 지난해 후반기부터 만들어진 용인지역 분묘유적 정밀실측조사 보고서인 ‘용인분묘문화’에 의해 크기와 모양이 확인됐다.
그러나 지난해 4월께 사라진 석물 4∼5기는 정확한 사진이나 기록이 부족한 상태다.
특히 도난된 석물을 그나마 빨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989년 촬영된 묘역 전경과 1995년 본사 향토문화유적답사단 운영시 홍순석 단장이 촬영해 소유하고 있던 자료사진때문에 이미 사라진 장명등 다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석물이 뽑힌 흔적을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모두 20여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부끄러운 문화재 관리대책>
최근 종영된 TV사극 ‘천둥소리’에서 허균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동안 용인시는 조용했다.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의 묘소를 자기 자치단체로 이전하기 위해 각종 수단을 쓰고 있는 반면 용인시에서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무더기로 도둑 맞고 있었던 것이다.
양천허씨 묘역의 문화재적 가치는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지만, 30여년전 타지역에서 이전됐다는 이유 때문에 관리대상에도 못 올라갔다는 후문이다. 만약 그래서 시 향토유적 등 문화재 지정을 회피했다면 극히 지엽적인 사고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라도 용인시는 관내의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문화관광부는 조선후기 유학자이자 음운학자로서 훈민정음의 자모를 독창적 방법으로 분류·해설한 유희(柳僖·1773∼1837) 선생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바 있다.
유희는 특히 용인출생으로 현감 한규의 아들이자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사주당(師朱堂) 이씨가 어머니다. 또한 강남대 홍순석 교수와 본사 취재팀이 수년전 유희 묘소가 용인시 모현면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 발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용인시는 아직까지 묘역을 향토유적으로조차 지정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용인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행사나 세미나도 없었고, 유희를 기리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늦게나마 용인시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관광부가 오는 9월의 문화인물에 허균·난설헌을 선정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용인시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자 뒤늦게 문화재 지정 추진을 서두르겠다며 뒷북 행정을 펼치고 있다. 공무원의 전문성과 인력에 한계가 있다면 문화원을 비롯한 민간향토문화단체에라도 자문과 인력을 요구해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정신문화 기반조성 노력해야>
허균과 난설헌의 생가터가 있는 강릉시는 이들을 테마로 지난 99년부터 대대적인 문화제 행사를 실시하는 것은 물론 홍길동을 주제로 상표권을 무려 23개를 따놨다. 또한 생가터를 밑천으로 온갖 수익사업에도 열을 올리는 등 지역의 역사성을 발판으로 21세기 관광상품화에 주력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은 연세대 국학연구원에 의뢰해 홍길동이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마을 남양 홍씨 집성촌에 살았던 실존인물임을 밝혀낸 후 각종 세미나와 문화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이들 자치단체의 노력은 단순 수익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랜시간에 걸쳐 정신문화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미있는 몸부림임에 틀림없다. 이와는 달리 용인시는 개발에 문화재가 훼손되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멀쩡한 문화유산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방치되는 등 일부 발빠른 자치단체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