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천년고찰 영화를 그리며

용인신문 기자  2001.05.18 00:00:00

기사프린트

향토문화순례31. 용덕사 3.

용덕사(龍德寺)
장원섭/세중옛돌박물관 학예연구관

천년 고찰(古刹)의 영화(榮華)를 그리며 ③

미륵전(彌勒殿) 앞에는 파손이 심하게 된 몇 개의 탑재(塔材)가 가지런히 쌓여져 있다. 이 절의 창건기(創建記)에 따르면, 철인 3위를 모시기 위해 예전부터 이 절에 있었던 3층 석탑을 폐하고 새로 탑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 탑재는 바로 새로 조성한 탑의 탑재(塔材)였을 것으로 보인다. 탑재의 크기로 보아 탑은 상륜부(上輪部)를 포함하여 약 2m가 넘는 규모로서, 철인상의 크기로 보아 탑의 기단부(基壇部)에 철인상(鐵人像)을 모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용덕사(龍德寺)에서 소장하고 있는 나한상(羅漢像)은 모두 58구로서, 이 절에서 전하는 기록과는 약간 다르다. 즉, 이 절의 창건기(創建記)와 헌납기(獻納記) 그리고 중수기(重修記)에는 모두 나한상(羅漢像)이 53위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최근 학술조사에서 58위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후대에 나한상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5위가 새로 제작되었는지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나한상(羅漢像)은 모두 돌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 채색(彩色)을 했다.
일반적으로, 불교 관련 조상(彫像)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나한상(羅漢像)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한상은 그 표현 방식이나 내용이 매우 다양해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모든 내용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곳 용덕사의 나한상들 역시 각각 제각기 다양한 자세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존상(尊像)이 있는가 하면 밝게 웃는 상(像)이 있고, 광대뼈가 돌출되어 험상궂게 생긴 상(像)이 있는가 하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상(像)이 있고, 움츠리고 있는 상(像)이 있는가 하면 어개를 펴고 자신에 찬 모습을 가진 상(像)이 있고, 무엇을 골똘하게 생각하며 상념에 잠긴 듯한 상(像)이 있는가 하면 아주 매끄러운 얼굴에 태평스럽게 한가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상(像)이 있다.
이들 나한상(羅漢像)들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앉아 있는데, 각각의 모습이 서로 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다양한 얼굴 표정과 자세로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서로 모여 있는 듯 하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치 중생(衆生)들의 일거수 일투騈?관조(觀照)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 나한상은 비록 작은 상(像)이기는 하지만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58위라는 많은 수의 나한상이 함께 전래되고 있다는 점과, 특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시좌(侍坐)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의 지장사상(地藏思想)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며,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용인시에서 발간된 「용인의 불교유적」에 따르면, 용덕사지(龍德寺址) 주변에서 상당한 규모의 건물터와 함께 백자대접을 비롯한 도자기(陶磁器) 파편과 기와편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창건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절의 성쇠(盛衰)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세월이 가고 사람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주변환경도 당대의 시대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이 절도 온 민족이 불국정토(佛國淨土)를 바라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세웠던 도량(道場)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땅을 다스리던 위정자(爲政者)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백성들의 삶의 방식에도 변화가 오면서, 이 절을 처음 세우면서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불국정토(佛國淨土)의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의 숭紵?뜻도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이들의 아름다운 뜻은 유구(遺構)와 함께 남아 있고, 또 그 뜻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분들이 있으니 천년(千年) 고찰(古刹)의 영화(榮華)를 다시 한 번 빛낼 수 있기를 빌어본다.
봄볕이 따사로운 경내에 스님의 은은한 독경소리가 퍼지면서 사방은 다시 깊은 고요함에 잠긴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한 조각 뭉게구름이 한가롭게 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