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는 요즘 도농복합시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연일 집단민원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봄 가뭄으로 인해 농심까지 메말라 타버리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특히 도시개발지역에서는 수년전부터 집단민원이 속출해 왔고, 향후 10년까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철거현장에서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싸움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수지1·2지구를 비롯한 택지개발이 진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철거민들이 골치거리로 간주돼 왔다. 물론 이에 앞서 토지주와 원주민들이 가장 먼저 민원을 제기해왔다.
민간업체의 아파트 단지는 더욱 심각하다. 정부의 잘못된 토지정책과 자치단체의 안일한 대응이 무분별한 개발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산과 들이 정원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산이 깍이고 코 앞에서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다. 결국은 소음·분진 때문에 더 이상 못살겠다며 시청으로 공사현장으로 몰려가 거센 항의를 하기 일쑤다. 지금도 곳곳에서 주거환경과 생존권 문제를 이유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권리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집단민원이 발생하면서 당사자인 주민들과 행정당국의 마찰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파트가 단순 주거개념을 떠나 재산가치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기에 기피시설이 들어설 경우 저항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화롭던 용인 땅에 인연을 맺은 수만∼수십만명의 주민들은 서로에게 이방인인가. 지역정서와 정체성이 사라진 현실속에 남아있는 괴리감이 서로에게 언제까지 무거운 짐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민·관 모두 너무 높은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 만나자마자 못살겠다고 헤어지는 요즘의 결혼 풍속도처럼 삶의 뿌리인 공동체 사회마져 흔들려서는 안된다.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칫 용인사상 초유의 부끄러운 ‘희극물’을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때까지 가보자는 식의 발상은 너무 소모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주민들이 오죽하면 다른 자치단체로의 편입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자. 또 오죽하면 차라리 편입시켜라는 식의 감정섞인 발언이 나왔는지도 말이다. 주민들중에도 법조인, 공무원, 정부기관 요원, 언론인, 교수 등 직업별로도 다양게 분포돼 있을 것이다. 이제 민·관 모두 좀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집단민원에서 발생 단순 싸움의 논리가 아닌 공동체 바로세우기를 우선 고민하길 바란다. 또 용인시장과 지역의 기득권층에서는 용인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심도있는 고민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