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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업가 구사카씨(66) 농장에서 고국으로 귀환을 대기중인 석인들 앞에 놓여있는 번호.
고국의 주인 곁을 떠나 이국땅에서 아라비아 숫자로 관리되던, 농장을 장식하던 장식품에 불과하던 석인들에서 짙은 회한이 스친다.
이제 낯설고 어색한 번호표를 떼버리고 진정 한국의 석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지난 13일 오후 일본 나고야 근처 미에현 이치시군 구사카 마모루씨 농장에서 의미있는 행사가 치러졌다.
한국과 일본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열린 일본 유출 돌 문화재의 환수 기념식이 그것.
이날은 일제시대로부터 시작해 최근에 이르기까지 원래 위치를 떠나 밀반출된 석인들이 제자리는 아니어도 자신들이 태어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참석자들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석인들이 웃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모든 회한을 훌훌 털어버리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고향에 갈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석물을 기증하는 주인공은 나고야 출신의 구사카씨. 그는 게이오대를 졸업한 후 유통업으로 부를 축적한 실업가. 35년전부터 석인을 비롯 우리나라 골동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 이어 아들에 이르는 3대가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고 있다.
그가 농장에 소장하고 있던 석물은 문인석, 무인석, 석등, 동자석, 석탑 등 대략 300여점. 그가운데 이번에 고려말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70점이 반환된다. 이가운데 54점은 기증되고 16점은 천회장이 사들이는 방식에 합의했다.
그는 의형제처럼 지내던이건 한일친선협회 중앙회 부회장의 소개로 세중옛돌박물관 천신일 회장을 만나게 됐다.
천 회장은 한국 석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구사카씨에게 석물의 일부만이라도 기증하라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 등 국내 문화재계 인사들도 일본쪽 지인들을 통해 그를 설득했다. 구사카씨는 수개월간 고심 끝에 마침내 문화재를 기증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일본 경제가 십여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을 때 브르나이 왕조에서 석물 전량을 양도받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석인만큼은 저에게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지금까지 석인을 지켜왔습니다."
구사카씨가 수호신과 같이 소중하게 지켜오던 석물을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이건씨와 의논한 결과 "유물은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보존책"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석인들이 귀향하는 모습을 대하니 진심으로 기쁘고 마음이 가볍습니다." 딸들을 시집 보내는 심정이라는 구사카씨는 석인들이 왠지 정겹게 웃음짓는 듯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석인들이 한일 우호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올바른 역사 의식으로 우호관계 다져나가고 석인을 통해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 불국사를 제일 좋아합니다. 불국사에는 멋진 문화재가 많습니다. 그것이 일본것의 원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미술에 심취하다보니 그 모든게 불교에서 온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는 그는 한국 문화가 좋아 한국미술관을 짓고 싶을 정도였으나 몸이 좋지 않아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는 한국만 12차례 유적 답사를 했을 정도로 우리문화에 심취해있다. 석물외에 다기를 비롯한 골동품도 상당수 소유하고 있다.
이번에 환수되는 석물은 관련 학자인 정영호 문화재 위원과 김우림 고려대박물관장이 천회장과 함께 일본을 방문, 우수한 석물로 선정된 것들이다. 이제 한국에 돌아오면 양지면에 있는 세중옛돌박물관에 전시 보존된다. 천신일 회장은 "일본에 나가있는 석물은 대부분 왕릉급의 우수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문화재가 일본에 밀반출돼 거래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라며 "밀반출을 막아야 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외로 유출된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내고 연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