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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 김승학

용인신문 기자  2001.06.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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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希山) 김승학(金承學)
(1881.7.12∼1964.12.17)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승학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본관 배천(白川). 자 우경(愚敬). 호 희산(希山). 평북 의주(義州) 출생. 한성고등사범을 졸업하고 2년간 교육계에 종사했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자 종로에서 며칠 동안 반대연설을 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 간 옥고를 치렀고, 1910년 10월 만주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가담했다.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총재부(總裁部)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국내 특파원으로, 백의범(白義範)·백기준(白基俊)과 함께 국내에 잠입, 평북과 황해도를 밀행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기관인 연통제(聯通制)를 조직했다.
88개소의 독립단 지단을 설치했으며 많은 군자금을 모금하고, 수백 명의 애국청년을 독립군에 가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만주로 돌아가 의민부(義民府) 총무부장·광복군사령부 군정국장(軍政局長) 겸 군수국장(軍需局長) 등을 역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개월 간 복역했다.
1921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신문》 사장을 지내고, 그해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혁명단체대표자대회에 참석했다. 그 후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 선전부장·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및 학무부 차장·주만참의부(駐滿參議府) 참모장·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최고위원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국내에 들어오다가 일본경찰에 다시 체포되어 5년 3개월 간 복역했으며, 그 후 다시 중국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독립신문사 사장·대한독립촉성회(大韓獨立促成會) 부위원장·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건국공로자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편 1920년부터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정교(正敎)를 지냈고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저서에 《한국독립사》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