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읍사무소 앞에서 고속도로를 우측으로 하고 분당 쪽으로 가면 ‘머내’입구에 이른다. 그곳에서 좁은 길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 오른편에 냇가가 있다. 장마 비로 인하여 냇가 가득히 물이 흐른다. 오래만에 넘실거리며 흐르는 물을 구경하는 아이들이 둑가에 한 줄로 서있다. 물은 흘러서 구성의 도심 속을 지나 넓은 평야를 적셔주는 젖줄이다. 물은 가끔 작은 폭포를 만들어 가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승용차를 운전하며 지나가는 길손도 가는 길을 멈추고 물 구경하는 모습이 근래에 보기 드문 현상이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다. 백로 한 쌍이 나래를 접는다.
지난 주말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고기리’를 찾았다. 날씨도 덥고 직장 동료간에 친목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고기리’에 가게 된 것이다. 또 음식요리를 잘한다는 소문도 확인할 겸 찾게 된 것이다. 평소 ‘고기리’ 예찬에 말을 아끼지 않은 동료 김부장의 주장에 의하면 ‘고기리’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것이다. 고기가 많은 곳이라 하여 ‘고기리’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어원을 찾아보니 근거 없는 추론일 뿐이었다.
용인읍지에 의하면 ‘고분현’이라는 마을과 ‘선기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일제시대때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고분현’에서 ‘고’와 ‘선기동’에서 ‘기’자를 차용하여 ‘고기리’라고 마을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고기리는 고기1리부터 고기3리까지 있는데 1리와 3리는 주로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고 고기2리는 계곡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70여호의 집들이 밀집되어 음식점을 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구비 잦은 좁은 길을 따라 숨가쁘게 오르니 초등학교가 보인다. 오래된 전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넓은 운동장에는 학교가 파한 후라 아이들이 없다. 시골 초등학교의 모습 그대로이다. 교사전면에는 정돈된 화단이 있었는데 철맞은 루즈베키가 노란 꽃을 한창 피어내고 있다. 도로변에 우뚝 선 느티나무 그늘아래 촌로 몇이서 대화의 꽃을 피우며 앉아 있다.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저승에 먼저 간 동료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일 수 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밭가를 지나는데 깨끗한 밀짚 모자를 눌러 쓴 허수아비가 오가는 손님을 맞는다. 허수아비는 원래 사람대신 날짐승 산짐승에게 무서움을 주면서 농작 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서있는 보초병인 것인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지난 일이 필름 풀려나듯 지나간다.
농민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허수아비를 보면서 수목이 울창한 곳을 지나니 커다란 저수지가 보였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둥그런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오수를 즐기고 있는 낚시꾼이 있다. 그리고 쉴 사이 없이 날아오는 백로들은 잡풀 사이를 오가며 길다란 부리로 먹이를 찾는다. 이런 곳이 ‘고기리’다.
싱싱한 잡목들이 잣나무와 소나무를 향하여 팔을 벌리고 서있다. 나무와 나무사이로 조립식 건물이 이국의 정서를 풍겨준다. 오겠다는 기약도 없지만 대형간판은 현란한 불빛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숲과 숲사이로 물 흐르는 소리는 교향악 그대로다. 음악을 뒤로 한 채 동료들과 찾아든 곳은 어부사시사, 전라도 남쪽 이 섬에서 고산이 자연을 벗삼아 노래한 연시조 제목이다. 음식점 이름이야 특별한 연유는 없겠지만 시가문학의 대가라 불리는 분의 작품 제목을 인용하였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윤고산’은 그의 연시조에서 자연에 취한 흥겨움을 사계절의 풍경과 함께 노래하였다.
구즌비 머저 가고 시냇믈이 배 떠라 배 떠라
낫대를 두러메니 기픈 興흥을 禁금 못 할돠
烟연江강疊첩 쟝 뉘라서 그려 낸고
노래하였다. ‘고기리’의 자연과 어부사시사와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를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이런 ‘고기리’가 지금은 몸살을 앓고 있다. 전원주택이 들어서면서 말이다. 환경친화개발을 입버릇처럼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고기리’현장을 살리자는 소리는 높지 않다. 도심 가까운 곳의 ‘고기리’, 이곳은 수지지역의 개발로 인하여 하루가 다르게 파손되어 가고 있다. 개발의 붐을 타고 오늘도 아픈 상처를 내면서 굵은 나무들은 밀차에 밀려 뿌리를 하늘로 내밀고 계곡물은 황토색으로 물들여져 흘러내린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어 가는가, 정든 사람들은 하나씩 마을을 떠나고 안면이 없는 사람들의 입성으로 인하여 불빛은 더욱 밝아지면서 이웃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갖가지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오늘의 ‘고기리’는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발이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