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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의 글> 수지, 그리고 시대의 변천

용인신문 기자  2001.07.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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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그리고 시대의 변천

<고광열/ 자유기고가>

지난 61년 8월 몹시 더웠던 여름날로 기억된다.
나의 이종사촌형이 경찰간부후보생 훈련을 마치고 처음 부임한 곳이 용인경찰서 수지지서장으로 보직을 받게 되었다.
경찰서장에게(내 동생이야기를 하니까 한번 만나자고 하드라)는 말을하며 속히 휴가를 낼 수 없느냐?고 하였다.
경기도 포천 최전방부대에서 근무하던 나는 어렵사리 휴가를 얻어내어 그가 만나자는 원천유원지에서 경찰서장 김군행경감과 참모들, 이종사촌을 만난적이 있었다. 지금 수원시로 편입된 원천 유원지와 고급 주택지로 유명하여진 영통 역시 용인군이 관활하고 있는 방대하고 아름다운 전원도시였다 명화와도 비유할 수 있는 원천호반(湖畔)은 청명한 수질에 파란색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풍덕천의 숲은 우거지다 못해 발 디딜 틈이 없었으며 논에 자란 벼이삭은 미국의 팝송가사와 같이 녹색으로 장관을 이뤘었다.
이 자연이 준 무한한 혜택을 인간은 외면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던 곳은 민 대머리로 변해 홍수의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원천유원지만 하드라?용인시가 소유하였다면 땅의 면적은 서울시와 버금가는 광활한 토지를 소유하였을 것이다.
두 번째 내가 용인을 찾은 것은 71년도 대선(大選)때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선 박정희 후보의 지원유세차 용인을 찾은 이효상 국회의장을 수행취재하면서 용인을 다녀간 일이 있다. 그때만 하드라도 용인은 자연을 그대로 보존한 공기 맑은 곳이었다. 원천 유원지까지 수지지서 관활이라는 점을 생각하여 볼 때 우리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웃 시(市)에 땅을 물려준 셈이 된 것이다.
가난은 생활함에 있어서 불편할 따름이지 행 불행과 연관 지을 수 없다. 3공화국시절, 힘있는 지도자에 의해 자신의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겨우고속도로를 뱀 기어가듯 선을 그은 결과 그의 후손들은 (페놀)이라는 맹독성 유해성분을 마셔야 하는 불행한 모습도 보아왔다. 자연을 보호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그만큼의 혜택을 주는 것이 자연의 섭리(攝理)이다. 내가 20대 중반 나이에 용인을 들렀을 때 아름다웠던 전원도시 용인을 찾을 것이(살아 진천, 죽어 용인)임은 결코 아니다.
나의 친구들이 정년 퇴직하여 속속 용인에 거주하며 동창회 분회까지 만드려는 것은 남은 생애나마 맑은 공기를 마셔가며 생활할 수 있는 소박한 마음 가짐에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