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면 소재 한 산기슭에서 묘 주인을 알 수 없는 특이한 묘제를 갖춘 묘역이 국내에서는 한번도 보고된 바 없는 희귀한 석물과 함께 발견돼 향토사학계는 물론 국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향토사학자 박용익씨의 안내로 본지가 단독 취재한 이 묘역은 조선시대 묘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지역은 물론 사학계에 소개되지 않았다.
최근 불교 석물 전문가인 장충식 동국대 박물관장이 묘역을 둘러봤으며, 3년전 박용익씨 안내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 장철수 교수(민속학)가 이 묘역을 찾았으나 아직까지 석물에 대한 규명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쌍의 문인석과 함께 발견된 이 특이한 석물은 높이 120cm정도로 역시 쌍을 이루고 있다. 이마에 가로 세로 깊이 약 8cm 정도의 정교한 사각형의 구멍이 나 있고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는 형식을 띠고 있으며 정수리 부근에 모자 형태의 조각이 돼 있어 마치 보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또 이 석물은 손에 병을 안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용익씨를 비롯 장충식 관장은 구멍을 왜 뚫었으며 그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갈래를 잡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장관장은 석물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원숭이 상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고 밝혔으며, 무인석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보였다.
박용익씨는 동자석의 일종으로 약병을 든 부처상이 아닌가 하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이와함께 이 묘역은 활개가 돌로 둘러쳐져 있으며, 이미 도굴 당해 웅덩이처럼 파헤쳐진 봉분은 3개의 둘레석이 드러나 있고 비석이 없어진 채 남아있는 비석 받침돌과 상석 사이에 가로, 세로 약 2미터에 이르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판석이 놓여있어 묘제 자체도 국내 학계에서는 처음 나타나는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 비석 받침돌에도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과연 이 묘의 주인은 누구며, 어떤 연유로 당시 묘제와는 다른 판이한 형식에 특이한 석물까지 제작해 세웠는지 신비감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또 묘역 주변에서 기와장이 발견돼 별도로 묘 주인의 신주를 모시는 감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함께 묘역 일부가 붕괴돼 무너져 내려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묘역 자체가 협소해 과연 석물을 어떻게 배치했느냐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용익씨는 “묘의 주인을 알 수 없으나 지위가 있는 사람으로, 공들여 만든 묘역”이라며 “봉분이 몽땅 파헤쳐?있고 석물도 묘 주위에 나뒹굴고 있어 도굴 흔적이 역력하다”며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장충식 관장도“희귀 석물과 특이한 묘제가 학계 연구에 기여할 것”이라며 “석물과 묘역을 즉시 학계에 보고하고 묘역 발굴 신청을 서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석물과 묘역이 황폐하게 도굴당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철저한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