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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구석기 유적

용인신문 기자  1999.08.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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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화유산<1> <양지면 평창리 구석기 유적-2만5000년전 유적지 소리 없이 사라지다>

편집자 주=용인 지역에 소재한 역사 유적지들이 개발에 의해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학 계에서는 개발에 따른 발굴일 경우 현장 보존은 어렵다고 말한다.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 외에 방 법이 없고 또 그것이 룰이라 한다. 그러나 역사 현장이 보존돼 학습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용인 지역에는 어떤 유적지들이 있었는지 지면을 통해 점검해 본다.

양지면 평창리 산 106의 14번지 17번 국도 옆. 이곳에 2만5000년전 구석기 유적지가 존재했던 사실을 용인 시민 대부분이 모른다. 평창리 주민들조차도 모른다. 현재는 유적지의 흔적도 없이 전원주택 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경기도박물관이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함께 지난해 6, 7월 이곳을 시굴 조사할 당시만해 도 유적지의 중요성으로 학계가 흥분했던 곳이다. 이곳은 구석기 학계에 공백으로 남아있던 중기로부터 후기 구석기 제작 기술로의 전이 과정을 밝혀주는 중간단계의 구석기 유적지라 해서 학계에서는 잃어버린 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로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 삼성에버랜드에서 조성중인 전원 주택이 2만5000년전 구석기 인들의 삶의 터전을 덮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수습된 모든 유물과 관련 자료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실험실에 보관돼 있 으며 화산재 및 토양 꽃가루 분석 등을 일본 학계에 의뢰한 상태다. 이곳에서는 대형석기에서 소형 석기로 넘어가는 기간에 해당하는 후기 구석기적인 석기 공작의 특성을 띠는 정교한 석영제 석기가 대량 출토돼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구석기 공작 연구에 중 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뿐만아니라 이 지역의 석기는 조잡한 석재로만 인식되던 석영을 고난도의 기술로 정교하게 가 공, 플린트나 흑요석같은 미세질의 석재에서만 정교한 석기 제작 기술이 나타난다는 통상적인 학 설을 결정적으로 반박했다. 또한 지역적으로 기존의 한반도 구석기 유적들이 대규모 강가나 하천 에 인접한 것과는 달리 내륙에 위치해 있었고 154점에 달하는 석기가 한 시굴갱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돼 주목을 끌었다. 이와함께 시기적으로 선후가 분명한 찍개와 정교한 돌날이 좁은 지역에서 상호 인접된 채 발견돼 고인류가 이같은 석3들을 동시에 휴대 보관했으리란 추측도 가능하게 했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일본 구석기 말기의 특징적인 석기에 해당하는 나이프형 석기도 끼어있었 다. 이 유물은 일본 구석기 학자들이 기원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함께 아직까지 출토된 예가 없는 석영제 화살촉 두 점을 비롯 화강암을 사용한 망치돌, 석 기 제작에서 타격행위를 뚜렷이 보여주는 조합 석기, 날을 세우기 위해 미세한 부분까지 정밀하 게 가공한 각종 긁개 및 소형 박편석기 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밖에 최말기 구석기에 해당하 는 호온펠스제 및 반암제 석기들도 지표층에서 수습됐다. 당시 조사 단장을 맡았던 이인숙 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석기들의 형태와 제작 기술 및 주변 환경 등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 지역에 걸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고고학 적 증거에 해당하는 곳"으로 "동아시아 구석기 말엽의 연속적인 문화상을 보여주는 최초의 유적 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 문화발달 단계의 시간적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 이후 최고의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유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