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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에도 왕릉이 있다"

용인신문 기자  2001.07.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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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에 왕릉이 있다는 설이 수년전부터 떠도는 가운데 최근 왕릉 제보가 계속 접수되면서 왕릉을 직접 가봤고 구체적 시기까지 추정한다는 한 인사가 본사에 찾아와 증언하는 등 지역 향토사학계가 왕릉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제보자는 그간 학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왕릉’으로 알려진 고려 창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만일 창왕의 것이 확실하다면 학설이 뒤바뀌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되는 것으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왕릉설은 본보 401호 1면 ‘희귀석물 발견’ 제하의 기사가 나가면서 연일 본사에 희귀석물 관련 문의와 제보가 잇따르면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제보에 따르면 이번에 보도된 희귀석물 묘역이 행자능으로서 왕릉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과, 가까운 근처에 행자능과는 무관한 별도의 왕릉이 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왕릉일 가능성은 이인영 용인문화원장이 기록에 근거해 제시했는데, 직경 12.6m의 토분으로 병풍석, 장군석 2기, 문관석, 상석 1기, 대석 1점 등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왔다.
그러나 실제 희귀석물 묘역은 장소가 비좁아 이같은 석물들이 들어설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가운데 인근 왕릉 소재 기록과 다소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설은 80년대에 직접 왕릉을 답사했고, 당시 왕릉의 석물을 눈으로 확인했었다는 제 3의 설이다.
이 설에 의하면 이번 희귀석물 묘역은 왕릉을 지켜주는 묘역으로 왕의 신하 등 왕과 관련있는 인물의 묘역이라는 것이다. 희귀석물의 이마에 있는 구멍은 왕릉의 신성함을 표시하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약쪽 구멍에 나무를 가로질렀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제보자는 이 능을 고려시대 창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보자에 따르면 고려시대 왕의 무덤 가운데 종적이 묘연한 두 개의 무덤, 즉 우왕과 창왕의 무덤가운데 창왕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제보자는 특히 지난 80년대에 국내 인사들에 의해 왕릉과 희귀석물 묘역이 조사됐으며, 왕릉의 우수한 석물은 그들에 의해 사라졌고, 이번에 보도된 희귀석물 묘역도 당시에 훼손 시켰다는 것이다.
이 제보자는 당시 기록을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특히 당시 조사에는 일본이 개입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제보자는 왕릉과 희귀석물 묘역의 봉분은 이미 일제시대인 1920년대에 도굴당했고 80년대 는 문무인석 등 석물만 남아있었다고 밝혔다.
또 이번 희귀석물 묘역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비석은 지난 80년대에 국내 인사들에 의해 뽑혀져 파괴된 가운데 근처에 분산돼 묻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