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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창> 처인성의 한(限)

용인신문 기자  2001.08.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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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의 한(限)

<최인태/농업-남사면>

처인성의 한은 풀어야 한다.
평양 역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처인성 전투 장면 그림 한점이 신문 1면 톱으로 뜬다. 우리는 왜 그림 한점에 흥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나.
몇 사람의 노력으로 우리 처인성의 실체가 드러나고 역사적 고증과 한을 풀기 위해 노력중이다.
연극 무대에도 오른다고 한다. 한판 신명난 굿으로 처인성의 한을 풀어내려는 열정의 몸짓임에 분명하다.
우리 민족을 한많은 민족이라던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끈기와 인내로 물리친 배경에는 한이라는 민족적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과 풀이는 서로 상반된 개념이지만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많은 민족이기에 풀어야 할 응어리도 많았던 것이다.
풀다라는 용어를 고찰하면 우리 민족은 풀이의 삶과 동고동락했음을 알 수 있다.
엉킨 실타래는 풀이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종잡을 수 없는만큼 꼬이고 꼬인 실뭉치를 은근과 끈기로 한올 한올 뽑아내다 막판에 술술 풀리는 것을 보면 그 희열을 무엇으로 대신할까.
풀이는 한쪽만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일방의 만족, 상대의 기를 죽이는 승리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을 다스리면서 우리 조상은 상생의 원리를 체득했다. 이웃과의 소원한 관계를 풀어주면 그것은 화해였지 복수나 굴복이 아니었다.
풀이는 일회성이 아니다. 곧바로 뒷풀이가 이어져 흥과 화합의 대동 한마당이 펼쳐졌다.
우리 민족은 한과 친숙해지면서 흥의 미학을 알았다.
무속의식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기를 푼다’는 의미의 살풀이는 전통무용으로 발전돼 즉흥성과 곡선미, 슬픔이 승화된 환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전통 무용으로 우뚝섰다.
한은 풀이의 미학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신명에 도달한다.
신명은 말초적인 쾌락이 아니다. 아리랑을 부르면서도 신명에 도달할 수 있는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손바닥만한 땅덩어리 하나 없이 수천년을 방황해온 팔레스타인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한과 교감을 나누는 신명이 있기 때문이다.
한많은 민족이기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남북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하고 경제난을 해결해야 하며 빈부격차와 지역감정 해소 등 해결해야 할 민족적 한이 많다. 어느 민족보다도 할 일이 많기에 정복해야 할 고지가 많기에, 이땅에 태어난 젊은 이들은 원대한 목표와 야망을 가져도 좋다.
신명을 주도해야 할 또다른 계층, 정치권이 풀이를 솔선수범 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너무 장시간 엉킨 실타래같은 정치권은 민족적 대의와 민생을 놓고 타살의 분위기만 가득하다.
처인성 전투에서 피아간 희생된 그 많은 영혼의 한은 누가 무엇으로 풀어줄 것인가.
연극 처인성에서 살풀이 춤판이라도 펼쳐 영혼을 위로해 보자. 그래서 처인성의 한을, 실체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