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사가 주최하고 용인향토문화지킴이시민모임이 주관하며 강남대 평생교육원, 용인시, 용인시의회, 용인문화원 등이 후원하는 홍순석 교수와함께 떠나는 제 4차 용인향토문화적 답사가 5일 기흥읍 일대에서 전개됐다.
이번 답사에서는 사은정, 이자선생 묘역, 한국민속촌, 최유경 묘역 및 사당 등을 둘러보며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5차 답사는 원삼면 지역으로 떠날 예정이다.
답사를 다녀와서/정영자(시민기자)
휴가끝의 일요일이라 늘어지게 자고 싶은 충동을 밀치고 잠을 깬다.
눈뜨면서 시작된 갈등.
예술의 전당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전을 볼까. 용인지역 문화 답사를 갈까. 화장하기 귀찮아 대충하고 문화 답사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첫 답사지 사은정.
기흥읍 지곡리에 위치한 사은정은 요즘 인기있는 텔레비젼 사극 여인천하 속 조광조와 관련이 있어 너도 나도 조금씩 아는 부분을 이야기 하느라 시끌시끌 하다.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 지붕의 이 정자는 다른 곳과의 차이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켠에 방을 놓아 밤에도 사용할 수 있게끔 설계 되었다.
정자 안에는 현재 2점의 편액이 걸려 1다. 그러나 처음부터 편액이 2점은 아닌가보다. 98년도 답사를 다녀갔다는 어느분이 1점의 편액이 없어진 것을 확인해 주었다.
용인의 정자가 다 없어지고 유일하게 사은정만이 남아 있다고 하니 보존 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답사반의 바램을 접고 음애 이자 선생의 묘를 거쳐 민속촌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답사 단원들은 장터 먹거리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한데 단장님은 전통 혼례에 관해 계속 설명 하실 생각이다.
조율이시의 상징은…
기다리던 식사시간, 더위에 지쳐 있던 사람들도 장터를 향하는 발걸음만은 가볍다.
식사 후 시원한 팔각정에서의 민속 강의는 흥미로왔다
봉숭아 꽃잎을 소금에 재워 보관하다 혼례전 손톱에 물을 들이는 풍습은 양쪽 가문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짜낸 지혜이다.
첫날밤 남성의 완전함과 여성의 처녀성 확인에 문제가 있을 때 완전 범죄를 노린 소도구였나보다.
어느 한쪽 문제가 있을 시 봉숭아 꽃물로 혈흔을 대신해 가문의 체면은 살렸겠지만 봉숭아 물을 하얀 요위에 흘려야먄 했을 신부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적 내지는 절박했을까.
요즘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세대들 한번 더 생각할 만하다.
더위를 떨치며 찾아간 평도공 최腑?선생의 묘역은 관리가 잘 되어 있어 후손들이 조상 섬기는 마음을 엿볼만했다.
그분 후손인 답사 단원 최인태 선생님의 살아 생전 어머니 병수발 이야기며, 삼년상을 치룬 이야기는 효자정문이 세곳에나 있다는 그분의 후손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대대손손 부모의 모든 것을 자식이 답습해 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효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요즘의 부모님도 큰 것을 바래지 않는다. 자식들 또한 크게 행할줄 모르고.
부모님께 제일 쉬운 안부 전화부터 드려야겠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 4차 답사.
풍부한 먹을 거리와 서로가 서로를 챙길 줄 아는 단원들로 인해 좋은 하루였다.
답사를 다녀와서/용인초 5-1 단서영
오늘은 8월 5일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이다. 기흥읍을 한바퀴 돈다고 하였다. 기흥읍에 어느 어느 곳을 가는 지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사은정, 이자묘역, 최유경묘역-사당, 민속촌, 공세리 5층석탑을 가는 것이었다. 용인시청에서 9시에 출발해서 강남대앞 집결을 거쳐서 9시30분에 다시 출발 하였다. 10시에 사은정에 도착하였다. 답사교재에는 지곡리 두암산 기슭에 있다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가보니 길이 좋게 만들어져서 두암산 기슭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사은정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 그중에서 들은 것은 사은정에 조광조, 조광좌, 조광보, 이자 등 네 분의 선생들이 사은정에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라고 설명해주시고, 다른 이야기도 해주셨다. 필기도구를 줄비할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다음으로 간 곳은 이자묘역이었다. 올라가는 길을 잘못들어서 다시 내려와 올라가기도 하였는데 강아지가 대본을 보구 갔다. 삼촌은 저것을 밟으면 좋다고 하였는데 그게 정말일까?
이자 묘역은 부아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 묘의 모양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이자선생은 부인이 2명씩이나 된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는 옛날 사람들은 다 부인이 2명 이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결혼 못한 남자도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다음으로 간 곳은 민속촌이다. 민속촌에 가서 혼례에 대해 교수님이 설명해 주셨다. 혼례를 다 끝내고 신랑집으로 신부가 가서 바로 부엌일을 시키는 지역도 있고 또 다른 풍습의 지역도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전통혼례를 하다가 지금은 웨딩드레스를 입고하고 결혼전에는 약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것에 비해서 요즘은 약혼도 안하고 당일에 바로 결혼을 한다고 한다.
민속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와서 최유경 묘역을 갔다. 그곳에 갔더니 후손들의 묘가 밑으로 가면서 한 묘씩 있었다. 최유경 그분이 서울 남대문을 만드신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최유경 선생의 자손이란 분이 자손들이 다모인다면 용인시 인구만큼 된다는 얘기를 하셨다. 다음으로 간곳은 최유경 선생 사당이다. 사당에 올라 갈때에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왼쪽계단으로 내려간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정했을까 궁금했다. 내생각대로 말하면 여러명의 사람이 내려오고 올라가고 하니까 분리해 놓은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다음으로 오층석탑을 가야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못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긴 시간동안 많은 느낌과 생각이 들었다. 우리주변에도 이런 문화재가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