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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선율을 싣고

용인신문 기자  2001.08.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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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예술인 <9> 음악인 서석정

자전거를 탄 음악 전령사 서석정(61·원삼중 교장). 용인에 최소한 30여년 살아온 사람치고 서석정 교장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라도, 아무리 골이 깊은 산골 동네라도, 30도를 넘는 무더위에도,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낡은 아코디언과 전자올겐을 둘러메고서 음악을 연주하러 나서는 서석정.
마을회관이건 동네 느티나무 아래건 즉석 무대를 마련해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동요부터 민요, 가요, 가곡 등 주민들이 원하는 노래를 신나게 연주하며 한평생을 지내온 서석정 교장은 문화예술 황무지였던 70년대부터 용인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의 선율을 심어줬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요즘도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말고는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자올겐까지 챙겨들고 양로원 고아원을 스스로 찾아나서고, 또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남사면 방아리 출신인 서석정 교장.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항상 찬송가 소리에 묻혀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갖게 된다. 가난했던 시절, 그?부모에게 매까지 맞아가며 방과후면 소꼴베는 일도 던져버리고 아리실 교회로 달려가 풍금에 매달린다.
민가와 뚝떨어진 동산위의 시골 교회는 밤이 깊어갈수록 바람 소리며 쥐 돌아 다니는 소리, 천장 들썩이는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지게 으시시하지만 풍금에 홀딱 반해 무서운것도 참아냈다.
한 신학생을 졸라 악보보는 법을 배우고는 혼자 독학으로 1년이 채 못돼 4부로 찬송가 600곡을 다 쳤다. 중 3때부터 용인교회와 아리실 교회 반주를 도맡았다. 지금도 눈감고도 600곡은 거뜬히 연주한다.
이론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그의 머리속에는 화성악이 새겨졌다. 용인고교에 진학하면서 학교 풍금에 매달려 집에도 안가고 학교에 남아 풍금을 쳤다. 그는 서라벌예대 작곡과에 진학해 김동진 선생에게 작곡을 배운다. 군에 입대해서는 군종과에 있으면서 군가지도, 군가작고, 군인밴드부 창설 등 음악 인생은 여전히 이어졌다. 전국 군가 경연대회에서도 당당히 입상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졸업후 송전중학교 음악 강사로 잠시 있다가 67년부터 가평 음악선생을 시작으로 한평생을 교단에 몸담으며 학생과 지역사회에 음악을 퍼뜨리고 심었다.
그는 용인 14개 읍면동에서 유일한 남사면가를 작곡했다. 또 남사중 교가, 포곡중, 수지중, 구성중 교가를 작곡했다.
“신앙심이지요. 남들은 사서 고생한다고 뭐라지만 난 학교와 사회 교사로서 나의 재간과 기쁨과 소망을 나눠주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을 거에요.” 레크리에이션과 율동과 감동을 주는 강연까지 곁들이는 그의 청중을 휘어잡는 솜씨는 경륜이 더해갈수록 점점 세련돼가 지금은 외부에서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
어느날 흉악범이 출소후 찾아와 서교장의 연주와 강연으로 새 삶을 살게됐다고 했을 때 더없이 보람스럽다는 서석정. 원삼중학교에 가야금반을 만든 그는 국악합주단을 만들어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을 살리고 보급하는 일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