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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답사를 마치고

용인신문 기자  2001.09.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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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다. 그리고 푸르렀다. 햇빛과 바람이 적당히 내 몸 속으로 스미는 9월 첫 일요일, 여느 답사 때처럼 집을 나서는 마음은 기대에 가득 차 있다.
답사팀이 제일 먼저 도착 한 곳은 이동면 서리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백자 가마터가 있는 곳 중덕마을, 무수히도 많은 자기 파편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이 83m에 달하는 초대형 가마터에서는 찻잔과 일상 용기 제기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고려 초기의 백자 가마터로는 국내 최초로 발굴 조사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크단다. 중덕마을의 백자 요지와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려시대 백자요지인 상반마을, 엄청난 양의 갑발이 군데군데 성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현재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11세기 백자 파편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발, 대접, 접시, 완, 종지, 뚜껑 등 다양한 형태의 기형이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갑발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 ‘도지미’. 옛 선조들이 침을 뱉던 그릇으로 이용했던 ‘타구’도 작은 공간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변이 초록으로 빽빽이 우거져 있어 차분함을 느낄 수 있지만 폭이45m, 상하의 길이가 70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가마터를 상상하니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규모나 산재된 유물을 통해 볼 때 용인지역이 고려백자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중요한 곳을 왜 세계 도자기 엑스포지로 선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대몽 항쟁의 전승지로 유명한 처인성을 찾았다.
총면적 5820평의 장방향으로 된 토성 내 눈엔 작은 동산 같아 보이지만 1977년 10월 2일 경기도 사적44호로 지정되어 있는 자랑스런 역사의 현장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 답사단원은 425m의 성곽 둘레를 돌며 ‘처인성의 승첩이 바로 처인 부곡민을 포함한 민중들에 의해서 거두어진 승리였겠구나’하는 걸 재차 실감하게 됐다. 그야말로 작은 성에서 세계를 정복한 몽고군을 물리친 한민족의 슬기와 힘을 되새기게 해 준 곳이다.
따가운 햇살 아래 고개 숙인 벼이삭, 논둑길 걸으며 고향의 정취를 한껏 느끼며 수태하지 못한 여인들을 위해 세워 놓았다는, 남근을 상징하는 선돌이 있는 남사면 창리를 찾았다. 속칭 ‘검바위’로 불리워지는데 쓰러지면 재난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어 토속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穗?
민속학적으로도 가치 있는 곳은 옛 모습을 재현하고 복원하여 전통을 살리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재확인 할 수 있는 지역 축제의 장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홍순석 단장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코스 세종대왕의 장인인 심온의 5대 손으로 어려서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인이었던 심대장군 묘를 찾았다. 입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큰 규모의 사당이 있고 그 뒤로 역사를 같이 한 은행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물은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되어 있다고 한다. 입구에 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값진 답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벌써 6차 유적답사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