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천국같고 때로는 지옥같고.”
원삼면 고당리 고불고불 논길을 타고 들어가다가 산아래 막다른길 콘테이너 박스 두 개가 놓여있는 곳.
이상학 화백은 마치 고도와도 같은 이곳 작업장에 갖혀 고투를 벌인다.
인기척 없는 적막한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유화 냄새가 고약하게 진동하는 화실 한켠에는 침대와 카세트와 휴대용 텔레비젼과 스팀 등이 마치 정물화처럼 놓여 있고 이 화백은 이곳에서 매일 그림의 향연속으로 빨려든다.
“졸려우면 잠 자고,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팔자좋은 사람.”
이화백을 찾아온 친구들은 속사정 모르는 말을 쉽게 내뱉곤 하지만 이화백은 이곳에서 남모르는 잉태와 산고 속에 새로운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다.
“혼자 자유롭게 자연속에 묻혀있으니 천국이 따로없죠. 산에 별난 새가 다 날아와요. 딱따구리 소리, 서쪽새 소리.” 그렇지만 작업하다가 막힐때면 이화백에게 이곳은 괴로운 지옥과도 같다. 가족과 떨어져 자유의 둥지를 틀었지만 고독과 외로움도 크다.
국내 화단에서보다 오히려 프랑스, 일본, 미국 등 해외 화단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상학 화백.
그의 그림은 신비로 가득차 있다. 인간 내면에 깊숙히 잠자고 있는 비합리적인 무의식을 불러내는 초현실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이상학은 원래 자연을 대상으로한 사실주의에 집착했다. 극사실로 치닫던 이상학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돌연 4차원의 세계로 변신을 시도 했다.
사물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세밀하게 묘사했던 극사실주의적인 기법에서 벗어난 그는 사물의 이미지를 이상학 내면의 세계에 투영된 모습으로 자유롭게 형상화 하기 시작했다. 자연에 대한 신비한 유혹에 빠졌던 유년의 기억, 청춘시절의 아름다웠던 꿈과 청순한 애정 등 심상의 움직임에 따른 의식, 무의식적인 대상들이 공간을 메워 나간다.
“모든 사물의 탄생 초기로 깊게 파고들면 내밀의 세계가 상상으로 펼쳐집니다. 시공의 잠재의식에서 깨어난 기억들과 회상의 씨앗이 한데 어우러져 초현실의 싹을 발아시키는 것이죠. ”
우리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어머니의 모태속에서 경험했던 환상적인 세계에 맞닿뜨린다. 그의 작품에서는 의인화한 인간의 상징적 형상과 변용된 아름다운 자연의 사물들이 유기적, 무의식적으로 연계돼 형상화 돼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이런 변신은 사물을 주 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서 시작했다. 관습적인 해석으로부터의 해방임과 동시에 시각의 혁명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극사실과 초현실주의는 서로 통합니다. 사실을 좀더 파고드니까 초현실입니다. 극사실까지 다 간다음 다시 그 내면속으로 들어가는거죠. 초현실과 사실은 맥이 이어집니다.”
이상학의 초현실 세계는 절반정도는 비현실적이고 나머지 절반은 초현실적인 모습을 띈다.
이상학의 초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나무와 산과 들이 하늘에 거꾸로 매달리지는 않는다. 바르게 있으면서도 신비로운 조형 질서속에서 환상감을 강하게 풍겨낸다. 그가 IMF 시절을 그린 도시의 2중주는 극히 사실주의적인 초현실 작품이다. 판자촌과 문명의 거대 빌딩숲이 부조화하게 어울리면서 부조리한 환상적인 이미지를 펼쳐내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황당한 초현실주의가 아니고 사실주의로서 상당한 초현실 이미지를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한국적 서양화를 지양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서양화는 서양화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한국적인 색채를 배제해 버린다. 그의 서양화는 따라서 우리의 눈에는 이국적으로 비춰진다.
“늘 새로운 것을 향한 변화, 한가지에만 머물 않는 것이 작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작가 이상학은 원산 태생으로 6. 25 때 남하해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초등학교시절 미술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지도를 받을 만큼 미술에 소질을 보였던 이상학은 다재다능한 예술적 끼를 분출시키느라 시나리오에도 손을 대는 등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 서양화가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그는 올해 여름 현대 미술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초청전시를 가졌으며 또다시 4곳의 갤러리에서 작품 제의를 해오고 있다. 그는 뉴욕에 작업장을 마련할 것을 구상중이다.
▶82년 일본 제 38회 프랑스 파리 싸롱 드 메 초대작가 선정 국제미술전(일본 동경, 프랑스 파리) ▶미국 L.A올림픽 기념 세계 100인 선정전 입선. 캘리포니아 주립대 미술관 외 11개 미술관 전시 ▶85년 프랑스 파리 르·싸롱전(파리 그랑팔레), 목우회 르·싸롱 수상작품 특별전 ▶95년 일본동경도 六義園畵廊 초청 개인전 ▶2001년 뉴욕 초청전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