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의 쌀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 누구나 쌀과 관련된 추억은 한 두 가지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고 추억의 대부분이 못 먹고살던 시절과 관련된 것들이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40대 중반이상의 사람들에게 쌀은 황금보다도 귀중하게 다가섰다. 한 여름에 쌀밥을 구경하기란 제삿날이 아니면 힘들었으며 꽁보리밥만을 먹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부잣집에서는 한여름에도 쌀밥을 먹었지만 가난하게 살다보니 쌀밥을 먹는 집은 한마을에 몇 집이 안되었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심한 쌀 부족을 타개하기 위하여 초·중·고등학교에서 혼식을 적극 권유했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선생님의 쌀과 보리 또는 잡곡을 3대 7이나 4대 6으로 적절히 섞었는지를 검사 받았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때문에 먹기 싫어도 혼식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당시에도 점심도시락만은 빈부격차(?)가 없었다.
쌀에 대한 대표적인 추억중의 또 다른 하나는 쌀 막걸리의 제조금지다. 쌀 생산량이 절대 부족했던 60∼70년대의 정부로 우리 민족 고유의 술인 막걸리를 쌀로 빚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밀주를 감시하는 공무원까지 두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밀가루 막걸리를 안 마신 국민은 없었다.
70년대로 부족한 쌀을 충당하기 위하여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개발하였으며 맛은 떨어져도 생산량은 월등히 많아졌다.
이처럼 귀중하게만 여겨지던 쌀이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급 과잉으로 쌀값의 폭락이 예견되고 재고량이 급격히 증가해 수매 량이 줄어들고 타작한 벼는 농민들의 근심거리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쌀 재고량은 99년 72만 톤에서 지난해 150만 톤으로 늘어나 연간 소비량의 21%정도가 재고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는 유엔 식량 농업기구가 권장하는 5%정도 초과한 수치다.
쌀이 애물단지로 전락한데는 소비의 급감등이 주요 원인이지만 그 동안 양 위주의 양곡정책을 펴온 정부에게 큰 책임이 있다.
쌀 농사로 절대 다수의 농가가 매달리고 있으며 농가 소득의 60%이상을 차지하는 농업의 그 자체이다.
쌀값 하락은 쌀 농사를 농민들이 기피하게 만들 것이다. 쌀 산업의 붕괴는 식량 부족사태를 부른다. IMF이후 경쟁력이 떨어진 부실기업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이 1백조 원을 넘어섰? 그러나 이중에서 몇 개 기업이 회생할지 미지수다. 그 많은 돈의 1%만 쌀 생산 농가에 배려해도 쌀 부족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농업은 제3의 농업혁명의 여명기에 와 있다. 이제 농업도 기술이 우위에 있어야 진정 선진 농업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쌀 농업이 탄탄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로 지속적으로 농민들에게 애정을 갖고 힘을 샀어 주고 성원해 주어야 한다.
갑작스런 쌀 정책 전환은 농민들에게 큰 충격이다.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득이 쌀 정책을 변경해야 한다면 정부로 연 착륙하도록 준비했어야 했다.
‘안보차원’까지 격상시키며 권장한 쌀 증산 정책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 동안 농민들은 쌀 증산과 관련해서도 너무도 순진하게 정부를 믿고 따랐다. 이들을 하루아침에 밀어낸다면 정부를 누가 믿겠는가?
믿을 수 있는 대안과 농민과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금년 모진 가뭄과 수해로 힘든 농사를 지었다. 올해만이라도 농민들이 원하는 대로 수매해야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쌀 정책을 선행해야 한다. 이제 농민들도 외국산 쌀밥 도시락 등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 전에 먼저 우리가 더 맛있는 고품질 즉석 쌀밥을 개발하고 우리의 쌀로 만든 밥을 만들어 보급하는 등 올해 같은 쌀 과잉재고가 우리농민의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쌀 산업 발전을 모색하는 전기도 마련하였으면 한다.
쌀 농사는 농민들이 협상이나 그를 통해 물러설 수 있는 작물이 아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을 만족시키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정부의 결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