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을날씨보다는 보송보송하여 더욱 투명하게 느껴지는 미국 LA의 가을.긴 해변의 롱비치가 눈앞에 펼쳐진 녹색잔디 위에서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곱디곱고 넓디넓은 푸른잔디 위에 배치한 하얀색 의자들 만으로도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아름다웠다.
신부와 신랑이 퇴장할 때축하객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물방울 불어대기와 상자뚜껑 열기. 엄지손가락만한 병의 뚜껑을 열어 호호 불어대면 물방울들이 하늘로 피어오른다는 사실은 알려주었으나, 집게손가락 길이의 정삼각형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주최측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으니 앙증맞은 상자를 손에 들고 궁금해하는 하객들의 마음은 모두 나와 같았을 것이다.
드디어 신부 신랑이 퇴장하면서 녹색잔디 위로 영롱한 물방울들이 피어오르고궁금증을 자아내던 아주 작은 상자 뚜껑들을 여는 순간 갖가지 색깔의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하객들의 탄성이 터지는 그 순간, 탄성 대신 동물학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라 뜨악한 모습으로 나비들을 바라보던 내모습을 누군가 카瓘着?잡았다면 그야말로 초상집에서 깔깔대며 웃는 자보다 더 정신없는 자로 치부당하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아주 더러는 질식했는지 날지도 못한 채 잔디밭으로 추락하는 나비,
아주 더러는 뚜껑이 열리기가 무섭게 높이 날아가는 나비,
그러나 대부분의 나비들은 갑작스런 햇빛과 자유에 어찌할 바 모르는 듯 조심조심 낮은 허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 나비들이 바로 주최측의 의도대로 하객들을 즐겁게 해준 주인공들이었으리라. 물론 그들로 일정시간 후에는 높이 멀리 날아 갔지만.
더도 덜도 말았으면 여기는, 만물이 풍족하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추석이다.그러나 언제부턴가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일만 하는 여자들, 차려놓은 상 앞에서 주인행세만 하는 남자들, 이러한 가부장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남녀구분 없이 모든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치우며 조상님 앞에 부부가 나란히 절을 드림으로써 여자들 스스로가 소외감 내지는 하녀감이 들지 않아야 명절의 풍요로움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소리도 커지고.
그러나 명절만 다가오면 요통과 두통이 심해지고 우울증이 생기는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 것이 과연 단순히 그 날의 과중한 노동 때문이며 차례상 앞에 끼지 못하는 서운함 때문이겠는가?
아니다. 우리 여성들은 명절이나 제삿날의 부엌노동을 얼마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도맡아 할 수도 있다. 여자들은 쉴틈 없이 일만 하는데 남자들은 화투장이나 돌리고 앉아있는 명절 분위기에 화가 치밀고 우울증까지 나타나면서 딴지를 걸게 되는 것은, 단순히 명절날의 불평등이나 과노동 때문이 아니다.
남자중심의 깝깝한 상자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우울증이며 딴지인 것이다. 권위를 부여잡으려는 남편과의 일상생활에서 이미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아내들의 심리적 분노는 시댁 조상 시댁 부모가 아니라 친가 조상 친가 부모를 위해 노동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법이다. 평소 시댁과 남편에게 존중받는 주부는 시댁을 위한 하루노동이 즐거움일 수 있다.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은 바로 남자중심의 상자 속에 갇혀 사는 나비의 존재라는 데서 비롯된다. 가부장제는 여자들을 작은상자 속에 집어넣기는 했으나 결코 뚜껑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여성 스스로 열어야만 한다.
더러는 그 상자 속에서 소리 한 번 지르지도 못하고 질식해 버리는 여성도 있을 것이고 더러는 그 상자 뚜껑을 스스로 박차고 훨훨 날 수 있는 여성도 있을 것이며, 더러는 뚜껑을 열어줘도 날지 못하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명절이 두려운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마음은 피하고 싶으면서 몸은 어쩔 수없이 따라 가는 악순환은 그만 중지하라.
일상의 삶을 통해 배어 있는 아내로서의 분노, 엄마로서의 분노, 며느리로서의 분노를 찾아내어 그 상자 뚜껑을 스스로 열어제껴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로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자유함을 얻을 때만이즐거운 희생도 가능해진다.
어쩌면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