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주위에 훌륭한 문화유적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해도, 그에 대한 사전지식과 심미안이 없다면 그저 돌덩어리나 폐허에 불과할 뿐 가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그의 글 ‘잡설’에서 “천리마는 항상 있으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세상에 천리마의 자질을 가진 말은 많이 있어도 백락처럼 천리마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기에 앞서서 아이의 잠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시켜 주는 백락의 지혜가 절실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 많은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관찰하고 대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사와 토론 위주의 수업을 늘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발표하는 힘을 길러주기만 해도 다행이다.
가정이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부모가 모두 일터에 나가거나 특별히 애정을 갖고 아이를 돌봐줄 어른이 없는 핵가족에 있어서는 아이와의 기본적인 대화도 어렵다.
부모로서 다하지 못하는 도리를 학원이 대신해 줄 수도 없다. 자본의 논리가 관 되는 사설학원의 경우 아이들 머리 수는 돈으로 환산되어 보이기 일쑤이고, 아이의 개성 존중과 잠재적 능력 계발은 기대하기 어렵다.
부모가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보습학원, 피아노, 태권도, 컴퓨터, 바이올린, 논술 등등을 골라주는 것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 마치 객관식 문제 풀 듯이 “주어진 학원 중에서 고르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고려사항은 서너 개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짤 수 있느냐는 것과 가격비교, 좀더 나아갈 경우 교육서비스의 품질 비교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 아이와 함께 하고 진지하게 아이 입장에서 대화하는 것은 관심 밖이다.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도 거의 공식화되어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학교 공부는 잘 했니?”등등. 만약 녹음기로 일년간의 대화를 녹음한 뒤에 다시 들어본다면 부모의 아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성의 없고 형식적이며 부모 입장만 고려된 것인지 놀라게 될 것이다. 부모는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아이에겐 결과만 놓고 꾸지람한다. 아이는 자신의 잠재성을 꽃피워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지속적인 공부 스트레스에 빠져든다.
아이의 잠재능력을 계발한다는 것은 영재성 검사를 하고, 많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가 스스로의 입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주고 아이와 함께 계획을 세워 즐거운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활태도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열 다섯이면 뜻을 세우는 나이라고 하였는데, 요즈음 중학생 열 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자신의 장래 희망과 꿈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아이는 한 명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꿈이 없는 아이,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에 멍드는 아이들을 양산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뛰어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작위적인 영재 교육 이전에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들로 산으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 많은 것을 체험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관찰력을 길러주고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중에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자. 세상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관찰하고 토론하며 대화하는 속에서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의식을 전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