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농(石 ) 유근(柳瑾)선생 (1861.9.26∼1921.5.20)
용인출생의 항일 언론인이자 민족계운동가
국가보훈처는 지난 3일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항일 언론인이자 민족계몽운동가 석농 유근(柳 瑾.1861-1921)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 기관과 공동으로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1861년 경기도 용인시 남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고, 동학농민 전쟁과 청일전쟁을 목격하면서 근대문물을 수용, 근대적 사고와 이념을 수용했다.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1895년 4월 탁지부 주사로 김홍집 내각에 참여했다가 관직을 내놓았고 그후 1896년 독립협회에 가담, 독립운동과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선생은 1898년 황성신문이 창간할 때 주필·논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시일야방성대곡을 쓰다가 장지연 선생이 격분한 나머지 끝을 맺지 못하자 선생이 후반부를 마무리짓고 신문을 인쇄함으로써 한국언론사에 빛나는 논설의 탄생에 기여했다.
이후 선생은 황성신문이 무기한 정간을 당하자 휘문의숙 숙감과 숙장을 맡아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하다 1907년 황성신문 5대 사장으로 취임, 경술국치 직전까지 언론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정신 함양에 노력했다.
경술국치 이후 선생은 1915년 중앙학교장에 취임,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조직을 지원하다 배후자로 체포돼 곤욕을 치렀고, 3.1운동때는 한성정부를 수립하는데 ‘13도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후 선생은 동아일보의 창간을 발의하면서 ‘동아일보’라는 제호를 지었고 양기탁 선생과 함께 편집감독으로 활동하다 “조선의 고질인 지방열을 없애라”는 유언을 남기고 1921년 숙환으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