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은 두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의 얼굴은 내 삶의 뿌리를 용인에 내리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나는 늘 용인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10여년을 경기지역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던 평범한 내가 용인과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만든 그 얼굴. 바로 그 얼굴은 용인의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어젯밤에도 샛노란 은행잎이 여린 빗줄기에도 한없이 쏟아졌다. 나즈막한 산하, 전염병처럼 밤새 번진 오색 단풍에 이 가을마저 숨을 죽였다.
도시의 각박한 생활을 벗어나 용인에 이사온 숱한 사람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각종 제약을 극복한 주인공들임에 틀림없다. 때론 적잖은 문화적 충돌과 아이들 교육문제의 갈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를 탈출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용인의 변함없는 아름다운‘얼굴’ 때문에 몰려왔고, 아직도 난민처럼 몰려올 태세다.
또 하나의 용인의 얼굴은 상처받은 얼굴이다. 서울특별시 규모의 넓은 땅을 가진 용인시는 도농복합시다. 동부권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아름다운 얼굴, 그 자체가 희망이다. 화장기 하나없이 그토록 청순한 모습이 있어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상처받은 서부권 주민들의 고통과 괴로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향후 10여년 이상의 고통과 후유증이 예상된다. 처음엔 그저 용인의 아름다움에 취해 왔지만, 몇 년 사이에 그만 무너진 사랑탑에 망연자실하고 만 셈이다.
우리는 용인의 두 얼굴에서 큰 의미를 느낄수 있다. 도농복합시라는 환경속에서 만들어진 극단적 개발논리로 인해 파생된 갈등과 분열. 분명 이로 인한 상처는 우리들의 몫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처럼…. 인공위성 사진에 찍힌 용인서부권의 골프장과 콘크리트 아파트 숲은 우리를 질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처받고 찢긴 녹지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몸부림에 힘을 보태야 한다. 또 다행히 지금까지 희망으로 남아있는 동부권 만큼은 개발 규제의 족쇄를 채운다 해도 탓해서는 안된다. 막바지 단계에 온 용인도시계획 재정비안 공람 공고를 둘러싼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유재산권도 중요하지만 이제라도 아름다운 용인의 미래를 위해 여유있는 호흡을 가담듬길 바란다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