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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0세기의 교훈

용인신문 기자  1999.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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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교훈

머지않아 우리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에 들어간다.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20세기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20세기는 희망 속에 열렸었다. 1815년 비엔나 회의에서 성립된 평화체제의 기본틀은 단 세번 국제간의 대분쟁으로 흔들렸을 뿐, 세계 열강들은 대체로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고 비교적 순탄하게 세기의 먼동이 밝아왔다. 또한 과학혁명에 대한 신념이 크게 부풀어 인류의 앞날에 장미빛 무지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20세기 벽두의 논조는 진정한 합리주의 시대의 개막이라는 메시지로 넘쳤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20세기는 암흑과 공포와 시행착오의 역사라 평가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첫째로, 정치제도 면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큰 실험, 즉 19세기 약육강식의 비인도적 자본주의를 대치할 새로운 제도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전체주의 제도를 70년 가까이 실험했고, 그것이 실패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무차별 대량학살의 무기를 사용했던 일이다. 1차대전 때는 화학무기와 독가스가, 2차대전 때는 원자무기가 등장했다. 2차대전 이후의 냉전시기에 비축한 원자무기의 총량은 전 인류를 열번 이상 살상할 홴돛?양으로 과거 반세기에 가까운 시기를 공포의 기간으로 만들었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면, 인류의 물질생활 편의의 댓가로 나타난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문제이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낭비는 새로운 대체에너지를 불원간 개발하지 않는 한, 심각한 에너지문제와 동시에 지구의 온난화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한 문명사회라는 현대에 여행과 주거이동의 자유가 없고 외부정보에 완전히 차단된 북한과 같은 사회가 아직 있는가 하면 굶주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아프리카 나라들이 있다.
냉전시대에는 정치이념이 같은 나라 가운데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었는데, 정치적 냉전이 사라지자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하는 비인도적 시대가 시작되었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의 세계정세는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착취, 민족 및 종교간의 갈등,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등 인류전체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후진국의 입장에서는 생존에 대한 낙관을 불허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20세기보다도 더 냉혹한 약육강식의 국제관계에서 살아남는 길은 강국이 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선진국이 되지못한 우리가 강대국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매?힘을 기르는 길 밖에 있을 것 같지 않다.
현자(賢者)는 타인의 경험과 타인의 능력을 활용하는 사람이며, 보통사람은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경험만을 활용하는 사람이고, 우자(愚者)는 자기의 능력이나 자기의 경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게 된 것은 정보를 차단하여 타인의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든데 한 원인이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가 세계 최후진국 대열에서 불과 30여년 동안에 중진국의 상위권에 부상한 것은 개발과 국제협력으로 타인의 경험과 타인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통신과 교통의 발전은 정보의 소통을 한층 빠르게 만들었으며, 타인의 경험과 타인의 능력을 빨리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보화에 한층 더 힘을 기울여야 하고 외국어 능력을 기르고 외국을 이해하는데 힘써야 하겠다.
경제에 있어서 자원도 중요하지만, 자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에 의한 부가가치이다. 기술 중에서도 독점적 첨단기술의 소유 정도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게 한다. 사우디에 정유공장이 있어도 정유기술이 없는 것과 같이, 기술은 설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술인에게 존재한다. 선진국이 되는 길은 창의적 기술인을 더 많이 양성하는데 있다.
경제 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이 교육개혁 문제에 정열을 쏟고 있는 것도 국부(國富)는 자원보다 국민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