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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이상정

용인신문 기자  2001.11.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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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만 있는 감동이 없는 시

한 달에 서너 권씩 시집을 대하다보면 어찌 뒤끝이 씁슬한 때가 있다. 이른바 기교만 있고 감동이 없는 그런 시를 대할 때면 말이다.
옛말에 자기 피부를 종이로 삼고 자기 피를 잉크로 삼으며 자기 뼈를 펜으로 삼아 글을 쓴다고 하였건만 요즘은 너무 쉽게 시를 쓰는 것 같다. 일찍이 윤동주는 너무 쉽게 쓰여지는 시를 경계하였다.
옥을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문장은 다듬을수록 좋다. 중국 당나라 시대 때의 가장 뛰어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백낙천을 비롯해서, 중국 송나라 때의 대문장가로서 유명한 소동파와 당송 8대가중의 한사람으로 불리우는 구양수 등도 자신의 천부적인 뛰어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쓴 글을 수없이 고치고 다듬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구양수 같은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을 다시 고치고 다듬기를 거듭하며 이를 큰 자랑으로 여겼다.
또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완성하기까지 무려 200번이나 고치고 다듬고 다시 쓰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시인이여, 제발 자신에게 부끄러운 시를 쓰고 시랍시고 우쭐대지 말고 철자법에 맞지도 않는 글 몇줄 써놓고 뭐라고 하면 ‘응?허용’이라고 저 혼자만 감동하고, 읽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시를 쓰지 말자. 시인의 길을 간다는 것은 고통과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자기 극복의 길, 자기 완성의 길로서 자기를 묵묵히 견디고 이겨냄으로써 마침내 스스로의 운명을 극복하고 조금씩 생의 본질로 다가서려는 것이 아닌가.
문학은 내가 택한 길이요, 운명이요, 삶이기에 좋은 작품을 써서 평가받고 우대받는 게 문학의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며 진정한 시인 정신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는가.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향기는 멀리 퍼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