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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성과 정치

용인신문 기자  2001.1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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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정치

<최인태/본지 편집고문, 용인문화보존회장>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해온 사회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근대 초기의 시민사회에서 참정권이 가장 늦게 주어진 것도 여성이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789년 메리크루와 라콤부가 국민의회에 “정치상 남녀가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건의를 했다. 이듬해 D. 구즈는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앙루아네트에게 ‘여성권리선언’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결국 여성 참정권은 좌절되고 한 세기가 지난 1846년에야 법률상 참정권이 인정됐다. 여성참정권이 가장 먼저 주어진 곳은 미국 오하이오주로 1890년이고, 영국에서는 차티스트 운동 이후 도시노동자(1867), 광산노동자(1884)가 참정권을 획득한 후 1918년에 비로소 부인참정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보통선거의 실시로 여성의 직접적인 참정권이 실현된 것은 1893년 뉴질랜드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세오岵막?여성정치인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고 투쟁의 과정을 거친 서구민주국가에서는 총회 등 비중 있는 정치인들도 나왔다. 대법원장과 총독이 여성인 캐나다는 여성국회의원이 30%에 달한다. 뉴질랜드는 여성총리, 여성 야당당수로 이른다 여인천하이다.
우리 나라는 해방 후 1948년 제정헌법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됐다. 여성의 정치적 역할은 세계적 추세에 비해 아주 미미한 행보를 띠고 있다. 현재 여성국회의원은 273명중 16명으로 5.86%에 불과하다. 여·야는 최근 내년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30%를 여성에게 할당할 방침이다. 여성 정치참여의 제고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여·야의 이런 결정은 여성참정의 확대를 위한 씨앗 뿌리기로 볼 수 있다. 기왕 내친김에 여성들의 정치무대 입지를 확대하려는 차원이라면 씨앗이 충실히 성장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는 정치개혁이 잇따라야 할 것이다. 비례대표 뿐만 아니라 지역구에서도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성 정치인이 구색을 맞추고 그냥 바라보는 꽃이어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먼저 여성 스스로 해야한다.
용인시의회에는 여성의원이 한 명도 없다. 이번 다가오는 선거에는 많은 여성이 출마를 해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