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는 손톱위로 눈이 내렸다. 바람이 우르르 달려와 흰 눈발을 세우는 설악의 능선은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앞으로 쏠리는 치열한 눈보라 세상이다.
잠시 바위에 기대어 큰바람을 먼저 보내고 바라보는 풍경은 정선의 인왕제색도, 넋을 놓고 적멸한 공간으로 나를 고립시키면 맑고 고요해진 심연 속으로 영혼이라는 거짓말 같고 기이한 순간이 찾아온다.
내 방과 거실, 익숙한 냉장고와 주방을 떠나 온전히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 한 존재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야 할지 무력감이나 삐걱거리는 타인과의 불화도 뚜렷이 보인다. 마치 생선의 살을 발라먹고 가지런히 놓인 흰 뼈 가시를 보고 있는 듯한 눅눅한 슬픔도 베어 나온다.
달달한 감을 먹을 때, 감씨를 입에서 뱉어낸다. 살아가면서 고통의 중심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생의 중심에서 나만이 추방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뱉어낸 감씨처럼.
그러나 감씨 속을 열어보면 은색 스푼이 두 개 있다. 말갛고 뚜렷한 무늬에 때론 감탄한다.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 남의 상실감이나 상처가 비로소 내 살이 되는 일체감을 같이 맛본다. 느긋한 행諛㉯막?타인의 슬픔을 바라보면 모자람과 흉터로 서걱거리는 것을 어쩌랴.
고통을 오랫동안 잊고 살면 추억은 허약하고 상처는 해독되지 않고 옮으며 부풀어오른다. 한 존재가 아닌 사물로 반란을 꿈꾸지도 않고 실존의 딜레마에 빠진다. 글쓰는 작업이 특권의식이자 엘리트라는 은연중에 풍기는 악취가 내몸에서 창궐한다.
나는 고통의 중심에 있을 때 생의 변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화된 의식은 열린 감성과 예리한 감각의 결빙을 막아주는 방부제다. 감질나는 허전함을 메꾸어주는 탱탱한 긴장감이다.
뱉어 낸 감씨를 꼭 반으로 저미는 정신의 강인함과 대상의 객관화만 이루어 낸다면 우리는 누구든지 그 맑은 무늬, 행복을 매 순간마다 느낄 수 있다.
가끔 병원을 간다. 처방전을 받아 나오는 이들이 부럽다. 처방전이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수군거린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 일, 보고 있는 것들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친 것은 바로 저입니다. 신께 나를 알린다. 자꾸 소리치다 보면 다음 번에는 처방전을 주실 지도 몰라, 아님 다른 어떤 것도. 고통에 중심에 있을 때 리는 생의 중심에 있다고 부조리하고 불투명한 이 삶을 견디자.
나는 아직 그럭저럭 평탄하게 살아 왔다는 삶보다 놀라운 삶, 견디는 삶, 극단의 삶이 더욱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