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 중에 ‘모반의 역사’라는 것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등장하는 주요 반란사건에 대하여 기술한 것인데 지금까지의 시각과는 달리 패자의 입장에서 이들 사건을 보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세계의 모든 역사는 승자인 영웅을 중심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가 바뀔 수 있었던 가능성은 수없이 많았으며, 그렇게 되었더라면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을 것이다.
이성계가 성공하지 못했으면 그는 조선왕조를 연 태조대왕이라는 이름 대신 실패한 반란자로 초라하게 역사책의 한 귀퉁이에 남았을 것이며, 박정희가 5ㆍ16에 실패했으면 김재규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묘청이나 홍경래가 모반에 성공했다면 그들은 역사를 바꾼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패한 주요 반란사건을 살펴보면 묘하게도 일치되는 점이 하나 있다. 주모자가 아끼고 신뢰하던 부하 중 하나가 배신하고 밀고하여 결정적인 패인을 마련하였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음미해보게 한다.
영웅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는 역사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는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징키스칸이 있기 위해서는 수 백만 아니 수 천만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혹은 고통을 받았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영웅을 존경하지 않으며 좋아하지도 않는다.
‘모반의 역사’와 같은 맥락의 책이 또 하나 있다. ‘한국사 새로 보기’라는 책인데 모 대학 교수인 저자는 역사에 있어서의 패배자에 대한 강한 연민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역사시간에 원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원씨 성을 가진 친구들이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을 웅변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껴 패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조명해 보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난 소회는 역사라는 것이 어차피 힘을 가졌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을 잊어서는 않된다는 점이다. 다만 그들은 그 힘의 매력을 좋아하지 않았거나 힘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수이고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용인의 주인은 누구인가? 진정한 용인의 주인은 힘없고 평범한 다수의 용인사람들이다. 겨우 선거 때에나 그것도 말로만 일컬어지는 주인이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받을 날은 언제쯤인가? 용인의 주인은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도 아니며,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다수의 용인 사람들임을 모두가 인식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신문도 그들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