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원삼면 능말 미륵불2

용인신문 기자  2002.01.27 00:00:00

기사프린트

박용익의 옛조상의 흔적을 찾아

열분 도량이 바로 이 미륵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이 자연석 미륵을 보살펴주는 극락사 도안 스님을 찾았다. 반갑게 맞아주며 그 내역을 이야기 했다.
스님은 약 300년전의 일이라 하며 "이 마을에는 오씨네가 많이 살고 있었지. 어느날인가 오씨네 어느 할아버지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너는 이 미륵을 뒷산위에 잘 모시면 소원을 이룰 것이다"라며 사라진 것이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다음날에도 같은 꿈. 사흘째도 같은 꿈이기에 아침 일찍 집안의 젊은이에게 꿈 속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 옮기기로 하였다. 장정 6명이 힘 안들이고 옮기던 중 현재의 미륵전 자리에 이르러서는 좌정하고 꿈쩍도 아니하기에 그 모습 그대로 모신 것이다. 그리고 초가집을 짓고 보호하며 오씨네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정결하게 가꾸며 고사도 지내니, 이 소문을 듣고 이웃마을인 독성리 목신리 주민들도 이 행사에 참석하고 1970년대까지 보호막에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약 150년전에는 암자를 지어 미륵을 보살피는 관리자를 두기도 하였으나 개화기때 오맹선 형제가 시주하여 오늘의 극락사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마을 경로당을 찾아 노인들에게 물으니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며 "이 미륵의 영향력이 컸던지 자손 없는 집안에서 아기를 얻기도 하고 먼길을 떠나는 사람의 무사함과 자식의 과거길을 빌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이 미륵을 캐낸 자리에는 샘물이 나타나 비가 오나 가뭄이 드나 물이 넘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으며 꾸준히 이어진다고 하니 신기하다며 도안 스님은 그 미륵과 샘에 정성을 드린다고 하기에 되돌아 보니 스님의 발자욱이 눈위에 또렷하다.
이와같이 마을 미륵의 출현은 한산의 미륵골 미륵, 김포의 초원지리 미륵이나 당진의 미륵골 미륵들도 주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솟구침을 알 수 있다.
한편 생각하니 이 고장은 외가의 외가의 고향. 미륵댕이 , 읏절골, 야굉이, 능말. 어린시절 이야기를 줄줄이 하시던 외조모, 늘 훈훈하고 아늑한 품을 주시며 찬밥을 드셔도 땀을 주루루 흘리시던 모습, 어렷을 적이나 시집가서도 가끔 가족들과 이보의 미륵까지 돌보셨다는 것. 그러기에 돌미륵에 서린 이야기를 되새기며 어머님은 찾아다녔지만 끝내 못 보시고 어린정취를 남기시며 돌아가신지 10년.
미륵은 조선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양대 전란을 치르면서 민중 문화로 토착되기 시작하고 나라가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백성들 스스로 자위의식이 생기게 되며 미륵 문화는 더욱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며 하고 동행자는 말하며 오늘의 비슷한 양상이라 말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되새기니 그림자는 돌아보니 외로울 따름, 갈림길에 눈물 흘림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날 그날 주어지는 것, 살아생전으 희비애락은 물결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