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번이(숲원이·고림동 임원부락)에서 정수고개 넘어 노루목까지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스팔트길이 생기고 자동차들이 수 없이 드나드는 길이 되었다. 이는 광주땅 곤지암에서 용인으로 들어오는 지름길이도 하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학교 등록금을 장만하려면 곡식을 짊어지고 김량장까지 나와 팔아야 했고, 주막거리·장터에서 사돈들과 어울려 막걸리 서너 사발에 거나하게 취해 흥겹게 돌아오는 아버지의 허리춤엔 자반고등어가 매달려 춤을 추곤하였다. 이런 것이 어버이들의 꿈이었던가 하였더니 지금은 양옥집만 즐비하고 한옥은 듬성듬성하게 보이는 마을이 바로 한터이다. 이 마을은 정수산을 북쪽에 들여놓은 아늑한 곳이다. 정수산은 옛 양지군의 진산이다.
한터란 지명은 큰 집터라는 뜻으로 대대리라고 이름하고 있으니 그 옛날엔 이 고장에 호족이 살았었다고 하나 구전일 뿐 알길이 없다. 마을에 들어서니 마침 두 노인이 반겨주었다. 송씨와 유씨이다. 정수산에 색다른 비석이 있으니 구경이나 하자고 하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그마치 십리정도 오솔길을 밟으니 이곳이 미나지골이란다.
산마루에 넓적한 큰 돌(200×150×25cm)이 일행을 떡하니 가로 막았다.
자세히 적힌 글귀를 보니 서산대사 휴정의 시비가 아닌가!
“아! 여기에 이런 시비가 있다니?” 일행과 더불어 어루만지며 몇바퀴 돌며 살펴봐도 눈만 휘둥그러질 뿐 감탄사가 절로 터저 나온다. 송씨, 유씨 두 노인도 눈만 꿈뻑거릴뿐 시를 읊어 달라는 눈치다.
〈눈을 밟고 들판을 걸어가더라도 어찌 잠시라도 함부로 가겠는가
오늘 나의 발자국이 남아서 뒤 따라(쫓아) 오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니!〉
‘눈을 밟고(踏雪)’라는 시이다. 되 읽고 풀어봐도 “후학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대답으로 뜻깊은 명 구절이다.
서산대사는 이름은 휴정이고 호를 청허당이라고 하나, 본 이름은 최여신이다.
1592년 임진왜란때는 73세의 고령임에도 승병 1500명을 규합하여 총수가 되어 왜군과 싸워 한양수복에 공을 세우고, 유(儒)·불(佛)·선(仙)의 삼교통합론을 펴 이룩한 공이 또한 큰 스님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나아갈 길을 멋대로 그리지 말고 의로운 참뜻을 기리며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담긴 교훈의 시이다. 그러기에 백범 김구 선생도 이 시를 즐겨 읊으시고 흉탄에 스러지시기 몇 일전에도 흔쾌히 붓을 잡으시고 먹물을 남기셨다고 한다.
마침 백범선생의 얼과 넋을 기리기 위해 “동포여 문화가 힘입니다”라는 그의 삶이 ‘칸타타’로 공연한다는데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는 오늘의 삶과 정치에 무엇을 되 묻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정치사회의 개혁을 원한다.
올해는 선거의 해, 눈 위의 발자국이 사그러지기 전에 우리모두 떳떳해지자. 그리고 너도 나도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겨 후학들을 위해 역사의 발자국을 어떠한 모습으로 남길 것인가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