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고양이 까치 등 토속적이고 천진난만한 그림으로 유명한 고 장욱진 화백(1917~1990)의 예혼 나들이 채비를 서둘러보자.
장욱진 서적을 접하는 것보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짙은 장욱진의 향기가 서려있는 곳.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과 더불어 20세기 한국 서양화단의 거목으로 손꼽히는 고 장욱진 화백의 말년 화실이 구성읍 마북리 244의 2번지 구성읍 사무소 후문 개울 건너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지 700평의 널찍한 공간에는 대나무, 항아리, 토담 등이 운치있게 어우러져 있는 미음자 한옥 화실과 그 옆에 바로 잇대어 있는 양옥 화실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존돼 있다.
장욱진 화백은 지난 86년 7월 이곳 한옥을 사서 미망인 이순경 여사와 함께 입주, 말년의 예술혼을 불태웠다. 이 한옥은 100년 된 고옥으로 장 화백이 구입할 때 원형 그대로 보수 작업을 해 한옥 자체로도 보존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 화백은 워낙 소박한 것을 좋아해 원형을 고집하다보니 집을 보수하던 인부들이 꽤 힘들어 했다고 전한다.
바로 옆에 이어져 있는 양옥은 89년에 건립, 90년 타계할 때까지 마지막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양옥 화실은 부엌을 불편해 하는 부인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미음자 한옥에서 장욱진 화백의 방은 안채의 건너방이었다. 안방은 부인방이었고, 워낙 작은 공간을 좋아하던 장화백의 공간은 한사람 누우면 꽉 차는 건너방이었다. 건너방 방문은 수그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문이다.
장화백의 한옥 화실은 중문을 들어서 왼쪽에 있는 사랑채 문칸방이었다. 두평이나 될까한 작은 공간에서 그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그림을 그렸다.
비공거사 장욱진에게 딱 어울리는 작업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양옥 2층 화실도 작기가 마찬가지다. 작업 도중 쉬고싶을 때 쉴 수 있는 공간은 거구였던 그가 눕기에는 너무나도 비좁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양옥 화실 작은 공간에는 아직도 작업중인 듯 물감과 붓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장욱진 화백은 새벽 4시정도부터 작업을 했다. 가장 맑은 정신으로 가장 넉넉한 무소유의 자유를 그려냈다.
이곳에는 서울 명륜동 본가의 초가 정자와 똑같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관어당이라는 현판이 멋스러이 걸려있다.
충남 연기 태생인 장욱진 화백은 마북리 직전의 수안보 시절과 이곳 마북리 시절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장욱진은 서울에는 잠시잠깐 들렸을 뿐 덕소와 수안보 등지의 화실에서 머문 시간이 많았다.
이곳 화실은 지난 95년 정부가 미술의 해를 맞아 장욱진 고택이라는 기념 표석을 세웠으나 그 의미는 아랑곳 없이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연립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경관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 화백의 장녀인 장경수씨(이화여대 교수)는 고택 바로 옆에 있던 공터를 구입해 자신의 집을 지었다. 공터에 또다른 무분별한 건물이 들어서서는 안되겠기에. 사무실겸 사림집을 겸한 공간으로 앞으로 이곳에서 장욱진을 기리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망인 이순경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이곳을 장욱진 기념관 및 미술관 등으로 단장하고 싶어하지만 현실 여건상 실행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용인시에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은 우선 고층 아파트에 묻혀져 존재조차 감지가 되지 않는 이곳 위치를 알리는 작은 안내 이정표라도 세워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방문을 하기전에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이순경씨에게 미리 전화를 하면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구경을 할 수 있다. 전화는 283-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