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때 처음 만든 가야금을 보고 고모부기도 한 대한민국 중요 무형문화재 제 42호 고 김광주 선생은 아! 진짜 잘만들었다. 나도 이렇게 못만들어봤다고 말했어요. 기분이 무척 좋았고 그 가야금을 아직도 갖고 있지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현악기 부문의 악기장인 최태진씨(63)는 45년여전의 기억을 더듬어낸다. 60년대에 집 한채와 바꾸자던 가야금. 하도 소리가 좋다기에 50년이 되도록 팔 생각은 엄두도 못낸채 깊이 간직해 두고 있는데 가끔씩 명인들이 빌려쓰곤 돌려주지 않으려 해서 항상 애를 먹는다.
기흥읍 보라리 한국민속촌 근처에 살면서 동생과 맏아들 정욱씨와 함께 전통악기를 제작하면서 대를 잇는 장인 최옹은 고모부의 부친때부터 시작해 4대째 가업을 전승하고 있다. 소릿고을이라는 브랜드로 우리나라 원로 명인들이 앞다퉈 찾는 최옹의 악기. 최옹은 가야금 거문고 아쟁을 주요 제작품으로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 현악기도 거의 다 만들어봤다.
고모부인 김광주 선생으로부터 사사한 최옹은 전주에서 고모부와 한집에서 살면서 7~8세때부터 제작했다. 악기 줄꼬기로부터 어깨너머 수업은 최옹의 잠재된 장인의 끼를 자극했? 14세때부터 본격 작업에 뛰어들게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질려본 적이 없다. 작업장에 들어서면 즐겁고 재미있기만 하다. 요즘이야 기계가 있어 수월하지만 예전에는 대패질부터 톱질, 짜귀질 등을 모두 손으로 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끝났을때의 보람 때문에 힘든줄 모르고 신바람만 난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내 손에서 떠나서 연주자에게 갔을 때 제일 좋고,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더 좋지요."
아무에게나 팔지도 않는다. 명품은 명품에 어울리는 명인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게 최옹의 생각이다.
19세때만해도 전국에 전통악기를 제작하는 곳이 2~3곳 정도였다. 지금은 50군데도 넘는다. 만드는 사람마다 제작 과정이 다 틀려 음색이 제각각인데 전통음악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최옹만 찾는다.
"음색이 틀려요. 줄 하나에서 세음까지 나오고 깊은 맛이 우러나야 제격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깊은맛보다는 양악기 소리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18현, 25현 가야금도 한 번 제작해봤는데 재미가 없어 본격 제작을 하지 않고 있지요."
최옹은 개량악기가 나오면서 전통이 퇴색할까 우려하고 있다. 7~8년전만 해도 너댓명이 일했는데 남들이 다 빼가서 이제는 동생과 아들하고 함께 제작하고 있다. 막내 아들 형욱은 거문고 연주자다. 집안이 전통음악과의 인연으로 맺어져 있는게 마음이 뿌듯하다.
전주에 있던 최옹은 지난 60년대에 서울 국립국악원으로 올라왔다. 6.25로 현악기가 모두 없어져 현악기 제작을 위해서 올라왔는데 잠시 머문다는 것이 아예 머물고 말았다. 국악원에서 15년간 지내면서 악기를 만들었다. 용인에는 82년에 내려왔다. 연주는 못하지만 국악 연주는 대부분 듣는다. 그래야 좋은 음색을 더 연구할 수 있다.
악기는 통, 혹은 판이 좋으면 음색도 좋고 좋은 명기가 나올 수 있다. 통 잡을 때 이미 명기고 아니고가 판단된다. 오동나무를 사용하는 데 통의 좋고 나쁨은 좋은 악기를 만드는 비법에 다름아니다. 나무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건조 시간이나 진을 빼는 과정, 두께 등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난 악기를 만들겁니다. 왜 이렇게 악기 만드는 일이 좋은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