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에 잠든 도학정치의 꿈이 꿈틀댄다
박용익의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 9> 남사면 이성동(李成童) 신도비
“겨울의 긴 잠을 깨니 가뭄으로 올해 농사가 걱정이다”라며 배상일, 정남해씨와 남사면으로 달렸다. 가는 곳마다 남사면이라는 이름을 처인면으로 빨리 바꿨으면 하는 마을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그래도 남쪽이라 봄내음이 물신하며 나물캐는 아낙네의 모습이 정겨웁기만 하다.
면소재지 봉무리에서 이동고개를 넘어 봉명리로 발길을 옮기니 “몽골장유”공장 앞에 비(碑)하나 우뚝하기에 살펴보니 조선조 중종때 기묘명현 졸옹(拙翁) 이성동(李成童)의 신도비이다. 세운지 26년 남짓하지만 우리에겐 낯설기 짝이 없는 자료이다.
이 내용은 다음기회로 하고 175cm×69cm×33cm 크기의 오석에 조선국 통정대부 사간원대사간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졸응선생 이공신도비 명병서(朝鮮國 通政大夫 司諫院 大司諫贈 嘉善大夫 吏曺參判 拙翁 先生李公 神道碑銘 幷書) 월성(月城) 이종락(李鐘洛)이 찬하고 월성(月城) 이성우(李性雨)가 글씨를 썼으며 첫머리엔 중종때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이야기로 장식돼 있다.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차옹(次翁) 호는 졸옹(拙翁) 장령(掌? 중손(仲孫)의 손자이며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희영(希潁)의 아들로서 세조(世祖) 경진(庚辰 1460)년에 출생하고 중종(中宗) 경진(庚辰 1520)에 사망하였다.
조광조(趙光祖) 조광보(趙光輔) 조광좌(趙光佐) 이자(李仔) 김세필(金世弼) 공서린(孔瑞麟) 그리고 이제서야 찾은 이성동(李成童). 용인의 기묘칠현(己卯七賢)이다. 60년대 후반에 경희대학 이상옥(李相玉)교수와 쓰러저 가는 사랑방에서 흐미한 초롱불아래 나누던 정담이 문득 떠올랐다. 기묘칠현이라고…. 이제까지는 기묘육현(己卯六賢)인 줄만 알았는데….
신도비가 있으면 대략 200보(약 50m) 안 밖에 묘가 있는데 배상일 정남해씨와 서너차례 여기 저기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기에 고생이 많았다. 후손이 없어 애를 먹었는데 결국 찾게 되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성동 묘와 묘비는 다다음호에 게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