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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정치의 원대한 꿈

용인신문 기자  2002.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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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명현과 용인’은 향토사가들의 큰 과제…이제라도 매듭을 풀어야

<제8차 용인문화유적답사를 마치고>

기묘명현의 표상 십정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선생

우리 고장 용인은 널리 알려 있듯이 선현의 유적이 많이 소재한 곳이다. 특히 충절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지 않다. 고려말엽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고집한 포은 정몽주는 예나 지금이나 전국 유림의 표상이다. 조선 중종조의 기묘명현 가운데 7명이나 용인과 연고를 갖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정암 조광조는 포은과 함께 용인의 얼로 추숭되어 왔다. 충렬서원과 심곡서원은 바로 두 분의 학덕과 지절(志節)을 기리는 곳이다. 정암과 함께 사은정(四隱亭)에 뜻을 남긴 조광보(趙光輔)·조광좌(趙光佐)·이자(李 ) 역시 지절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신 분이다. 이자선생의 고택과 묘역은 이미 용인시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들에 비해 기묘명현인 김세필(金世弼)·이성동(李成童) 선생은 죽전동과 남사면 묘봉리에 묘역이 있으면서도 별반 찾는 이들이 없다. 김세필선생의 묘역은 화를 당한지 4백년이 지난 1999년(기묘년)에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되었다. 최근 난개발로 훼손 위기에 처하자 그의 후손들이 나서서 힘겹게 얻어낸 결과이다. 용인시에서 문화재 지정을 미루자 경기도에 직접 건의하여 뜻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결과적으론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위상이 더 높아진 셈이다.
사실,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선생은 지금까지도 정암의 명성에 가려진 인물이다. 그는 정암보다도 10년이나 앞서서 중종의 신임을 받고, 도학정치를 구현했던 명현이다. 정암 이 ‘주초위왕(走肖爲王)’사건으로 유배되고 사사(賜死)되자, 이 일이 잘못되었음을 중종에게 간언하다가 화를 당했던 인물이 바로 십청헌이다. 중종 당시의 역사기록을 살피면, 십청헌은 정암의 강직함을 우려하여 개혁의 완급을 충고하였다. 정암이 사사되었을 당시 십청헌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오던 때였다. 그가 조정에 있으면서 정암의 무고를 중종에게 간하였다면 사사됨은 면하였을 것이라는 것이 사관들의 평이다. 정암과 십청헌 두 선생의 인연은 이처럼 깊다.
십청헌의 행적이 드러나지 못한 것은 그의 학덕과 지절이 정암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는 고려말 충신으로 포은과 함께 이름을 남긴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고손이며, 세종을 비롯하여 여섯 임굼?섬긴 바 있는 명신 김영유(金永濡)의 손자이다. 그의 가문은 명문거족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가 당대 유림의 사표(師表)로 천거되었음을 보면, 훈구대신이나 신진사림들로부터 명망을 함께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경학(經學)과 시문(詩文)에 모두 뛰어나, 도학자요 문인으로 높이 평가된다. 사관은 십청헌의 인물됨을 이렇게 평하였다. “김세필은 학술과 재예가 뛰어났으며, 자상하고, 스스로 삼감으로써 시류의 무리배들과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은 까닭도 거기에 있다.”
십청헌의 이러한 성품은 그의 아들 김저에게 이어진다. 김저는 명종때 윤원형의 횡포를 간언하다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참수되었다. 이로써 누대에 걸쳐 충절로 이어온 그의 가계는 김저에 이르러 멸문(滅門) 되었다. 십청헌의 시문집이나 관련 사료는 이 때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십청헌의 행적이 소실되어 전하지 않기에 자연 그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십청헌에 대한 관심이 기울어져야 한다. 후손들은 그늘에 감춰졌던 십청헌의 학덕과 지절을 선양하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 여느 가문의 후손들이 그러하듯이 선조 묘역의 보존이나, 향사만이 능사가 아님을 직시해야 풔? 다행히 최근에 많은 자료집이 정리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홍보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 용인문화유적답사단과 함께 십청헌의 묘역을 찾았을 때 그 같은 노력을 느낄 수 있어 가슴 뿌듯했다. 정암 조광조선생의 유적을 답사할 때의 참석자들은 매우 많았다. 이에 반해 십청헌의 유적을 답사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꼭 날씨 때문이었겠는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십청헌에 대한 관심 부족이었을 것이다. 용인지역의 향토사가들은 ‘기묘명현과 용인’이라는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십청헌의 위상을 재평가하는 일도 그 하나일 것임을 제기한다. 더욱이, 그의 묘역은 난개발의 표본지역인 죽전지구 중심에 있다. 대나무 숲처럼 솟아나는 아파트의 그늘에 묻혀 그의 학덕과 명망이 가려질 것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문화환경조차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답사단의 충정을 모아 이 작은 글로 시행정 당국이나 향지모의 관심을 촉구한다. (홍순석, 강남대교수, 용인향토문화유적답사단장, hongssk@kang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