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즐기기-용인5일장>
울긋불긋한 천막이 용인 중심가인 김량장동 금학천변 약 1km를 긴 띠로 수놓는 용인 5일장.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멀리 수원에서도 장구경삼아 아주머니들이 무리지어 찾는다.
고춧모, 방울토마토 모종 등 각종 채소 모종과 과일 나무를 사기 위해 모현에서 5일장을 별러 나온 아주머니. 이동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채소찌꺼기를 처리하기 위해 닭 8마리와 오리 8마리를 샀다.
병아리 한 마리 사가라고 권하는 병아리 장사 아저씨, 꼬깃꼬깃 두루마리 화장지에 싼 쌈짓돈을 꺼내 강아지 값을 치르는 남사에서 온 할머니. 아이들 옷을 고르는 젊은 아낙들. 인파로 북적대는 시끌벅적한 5일장. 닭이 퍼득거리고, 강아지가 끙끙거리고, 몸에 좋은 토끼를 먹기좋게 사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토끼를 즉사시키는 끔찍한 장면도 한쪽눈 감고 바라볼 수 있는 진짜 삶의 무대.
강정을 만들기 위한 널직한 판대기 옆에는 조청을 녹이기 위한 커다란 양은솥이 불위에서 설설 끌고, 길이 떠나가라 하고 뽕짝을 틀어대며 불구의 몸으로 땅바닥을 간신히 기어다니면서 좀약을 파는 아저씨. 인생의 애환이 그대로 읍팀獵?서민들의 무대. 시원하고 깨끗하고 편리하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품들이 빼곡히 진열된 대형 쇼핑센터의 나들이도 좋지만 어쩌다 한 번쯤 인생살이의 애환이 묻어나는 장터를 둘러보는 것도 꽤 멋진 일이다.
값싸고 볼거리 많은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바로 잇대어 있는 용인 재래 상설시장안은 썰렁해지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천변에 늘어선 5일장으로 몰려들어 시장 상인들의 매출액을 떨어뜨리자 한때 5일장 폐지 움직임이 불같이 일기도 했었다. 이제는 대형마트 등이 상설시장과 5일장이 서는 복판에 들어서서 많은 손님들을 앗아가 버리자 5일장과 상설시장은 공존의 존재로 바뀌어버렸다. 아이들 손잡고 일부러 5일장을 구경 나가는 젊은 엄마들도 많다. 아이들에게 생동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날을 벼르고 별러 아이들과 함께 장구경을 나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날. 김량장동 5일장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박용익 용인향토문화지킴이시민모임 대표는 "아마 90년은 족히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성면에 서던 장이 일제시대인 1910년대에 김량장동으로 옮겨왔다.
"아마 46년, 47년 정도일거에요. 광목이나 옥양목, 소? 무명천에 먹일 풀을 쒀서 팔면서 국수도 만들어서 팔았고, 인절미와 막걸리도 팔았어요."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먼먼 옛 5일장 풍경. 60년대 초까지 주막거리며 장국밥집도 있었다.
인절미를 만들기 위한 팍기도 있었고, 소나무 가지만 묶은 삭장구도 있었고, 지게짐 장작, 마차에 실린 장작, 물감, 뻥튀기, 사발꾼들의 막사발, 자반고등어, 문종이, 색종이 등 추억속에 묻혀버린 정겨운 옛 용인 5일장 풍경이 70넘은 노인의 기억 언저리를 즐겁게 맴돌고 있다. 6.25때 잠깐 공백기를 빼고는 51년부터 곧바로 장이 섰다.
모현사람, 포곡사람, 양지, 이동사람이 다 모여 콩자루, 쌀자루 하나씩 들고 술막다리 근처에서 세상 돌아가는 소문을 들었다. 사돈끼리도 막걸리 한잔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암소, 숫소 팔러온 사돈. 남들한테 파느니 서로 바꾼다. 막걸리 한잔 들이키고 길 잃고 헤매는 주인들을 소들은 원래 자신의 주인 집으로 안내해 끌고 갔단다. 사돈들이 서로 집을 바꿔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트럭과 택시가 처음 나왔을때는 쌀 닷말 지게에 지고 팔러 나와 술취해 택시타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촌놈이 처음으로 택시타보는 그 재미. 수여선이 서는 역과 버스터미널에는 장사꾼들이 역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시골 아주머니들이 이고 지고 나오는 곡식을 싼 값에 사서 시장에 나가 비싸게 팔던 얌채족도 있었다.
금학천변에 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10년정도 된다. 그전에는 용인 상설 재래시장 골목안 흰 천막 아래 5일장이 섰다. 급한 병이 아니면 집을 나서지도 않았다. 장날이 돼서야 장구경 할겸 겸사겸사 집을 나섰던 시골 사람들의 천연스럽고 느긋했던 일상이 덧없는 5일장 그리움 속에 녹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