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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으로 만나는 옛벗과의 재회

용인신문 기자  2002.05.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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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익의 옛조상들의 흔적을 찾아 (11)- 송탄면 조정암 유허비

조정암과 오학사의 시공을 넘은 만남

용인의 기묘칠현(己卯七賢)을 찾아 지역내 전역을 샅샅히 찾아 다닐 즈음, 조정암(趙靜菴)선생이 진위(평택시)에서 태어났다는 유허비가 있다는 진매숙 선생의 연락을 받고 정남해씨와 함께 발길을 옮겼다. 용인 울타리 밖이긴 하지만 조정암선생과 관련된 비문이기에 서둘러 흔적을 찾기로 했다.
평택시 송탄 출장소에서 길안내를 받으니, 남동쪽으로 가다가 송탄고등학교 앞에서 좌측으로 돌아 3Km 정도가면 얕으마한 언덕(옛 성터자리라고 함)이 있고, 그곳에 올라보면 충의각(忠義閣)이 보인다고 했다.
정암 조광조(靜菴 趙光祖)와 추담 오달제(秋潭 吳達濟)의 유허비(遺墟碑). 아리송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출생(出生), 생거(生居), 우거(寓居)의 단서를 숨가쁘게 찾다보니 비록 단칸의 충의각이지만 나름대로 단아하였고, 그 옆에는 해주오씨 문중에서 세운 추담 오달제 선생의 유래비가 있다.
비각안의 비석(140cm×90cm×15cm) 전면 머리엔 그 당시의 진위현 송장면(振威縣 松莊面)의 면이름인 송장(松莊)이 전세체로, 정암 조선생(靜菴 趙先生) 충렬 오학사(忠烈 吳學士) 유溶幟?遺墟之碑)라는 글씨또한 작은 글씨체로 유허비를 세운 뜻을 기록하고 있다.

『반지산(盤芝山) 동쪽의 선생의 옛터
성현(城峴)아래 학사의 옛집터
우러러 살피니 마음이 숙연해져
삼가 고하며 돌에 글을 써 세우도다
숭정기원후 삼경신(崇禎記元後 三庚申) 유월(六月)에 세우다』

위 글을 보니 정조(正祖) 24년(1800년)에 유허비를 세워 이제 200년 남짓하지만 진위의 유림(儒林)에서 조광조, 오달제 선생의 고귀한 정신의 자취가 있음을 길이 전하고자 조정(朝廷)에 청하여 허락을 받고 세웠다하며 비의 위치는 이충동(二忠洞)의 오달제 선생의 옛집터의 뒷산에 해당한다.
동령마을에 사는 관리인 유노인은 “밭가는 일은 농부에게 묻고 베짜는 일은 아낙네에게 물어야 한다”며 유허비에 관한 얘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약200년전에 진위의 유림들이 조광조 선생의 유허비(동령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오자동의 최수성등과 교유하였음)를 세우려 비석을 달구지에 실어오는데 현 충의각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겨 살펴 조사하니 바로 그 아래가 오달제 선생의 옛집터가 아닌가! 그리하여 고유제를 올리고 다시 유허지비를 새겨오니 그때서야 달구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멈췄던 자리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조정암과 오학사의 고귀한 정신은 어찌 말로 표한할 수 있단 말인가! 현재 평택시 향토유적 제5호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선현들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기리며 정신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데 우리 용인은 어떠한가. 오달제 선생의 출생지 학일리의 전설, 남구만 선생이 낙향하신 갈담리 약천의 노리배는 강릉에 머물고, 어윤중·최규서 선생의 유적 유허는 저수지에 뭍히고, 이재선생의 서원은 샘골의 한천이 되어 버렸다.
허난설헌의 한견고인서(閒見古人書)도 색 바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