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에 위치한 남한산성 문화유적 답사지로 정해진 순간부터 기다림의 연속이다. 투명해서 좋은 곳이니까.
남한산성에 도착하니 남한 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의 전보삼 회장과 회원이 용인 답사팀을 반갑게 맞이한다.
행궁이란? 도성안의 궁궐이 아닌 임금이 거동할때 머무르는 별궁을 말함이며 화성행궁, 온양행궁, 남한산성의 남한행궁이 대표적 이였다 한다.
전보삼 교수의 안내로 4각석재 기둥 2개가 수문장 처럼 지키며 부활을 꿈꾸는 행궁터 그곳에서 답사는 시작되었다. 번창했던 건물이 소실 되고 주춧돌만 남아 역사를 말해주던 그터에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9월에 상궐 하궐 그외 다른건물이 복원 되며 지나간 역사를 솔바람 소리로 전해들을수 있겠지 산성안에는 참으로 많은 도지정 유형문화재와 기념물이 있었다.
숭열전 도지정 유형문화재 2호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이서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정면3칸 측면2칸으로 홑처마의 맛배지붕 건물로써 좌우에 부속건물을 거느리고 대문도 솟을 삼문에 중앙에는 태극무늬로 장식을 해놓았다. 온조왕을 모신 사당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한강이남 백제의 발원지임을 다시한버 일꺠운다. 시간을 거스러 오를수 있다면 상처받은 순간을 떼어내고 돌하나 쌓으면서 기원하던 마음을 그부분에 채우고 싶다. 남한산성의 질감은 복합적이다.
고집스레 거칠고 자유스럽게 매끄럽다. 창을 베개삼아 잔다는 침괘정, 2층누각의 수어장대, 군사를 훈련시키고 무예시험 장소로도 사용되었던 연무관을 거쳐 현절사를 찾았다. 이곳은 아픔의 집합체, 아끼던 가족을 두고 먼 이국에서 시신조차 돌아 오지못한 삼학사(오달제,윤집,홍익한)세분의 영혼을 모신 도 유형문화재 4호 소헌세자, 봉림대군과 함께 청에 끌려가 충절을 지키다 심양의 서문에서 생을 마친 세분의 절개가 사당 마룻장 마다 스며있는 것 같다.
솟을대문이 2개있어 사당출입시 사용하던것과 본당 출입시 사용하는 여닫이 2쪽문으로 둘다 중앙에 태극무늬가 있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크기로 홑처마의 맛배지붕의 본당과 2동의 부속건물을 거느리고 있었다.
사당과 사원의 기능을 겸하였을 것 같은 현절사에서 우리는 오달제 선생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불어오는 바람에 찔레꽃향이 선생의 아픈 마음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 불어왔던 바람일까...
평화롭게 오늘을 마무리 하고 싶다.
아직은 나에게 보여주지 못한 남한산성의 속살같은 부분을 보기위해 바람소리가 부르며 그때 또 올것이다. 누구와 동행할 필요도 없이 매월 마지막 일요일 10시 그곳에는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의 답사가 있다고 하니 오늘 하루의 답사는 아는것만큼 보인다.